“타이왕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펜스리 낭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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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왕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펜스리 낭스리 ”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09.12.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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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구, 펜스리 낭스리 부부
▲ 농사일 대부분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힘든 작업이다. 남편은 밭에서, 아내는 인삼밭 일을 끝내고 막 집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하루 일과를 끝낸 수더분한 농부 가족의 모습에서 밀레의 ‘만종’을 본다.

세상은 참 넓다. 그 빠른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씩을 날아가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다를 건너 한 참을 가도 역시 그 곳에 사람들은 살고 있다.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세상 곳곳에 사람들은 모래알 같이 참 많다.
이렇듯 참 많은 사람 중에 강응구(52), 펜스리 낭스리(47)씨는 영겁의 연을 거친 부부의 인연을 맺어 살고 있다. 위로는 아버지 강성복(81), 어머니 엄운선(80)씨를 모시고, 아래로는 외아들 우영(8)이와 한 지붕 아래서 3대가 오순도순 산다. 보은군 삼승면 천남 2구가 그들의 보금자리다. 양옥형태의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집 주변에는 표고버섯 종균을 접종한 참나무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몇 마리의 닭과 한 마리의 토끼도 눈에 띈다. 또래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진 우영이의 플라스틱 굴삭기 장난감, 네발 자전거가 마당 한 편에 뒹군다. 우영이는 판동초교 1학년생이다. 전체 1학년이라야 고작 남자 3명 여자 7명 합쳐 10명으로 희소성에 속하는 우영이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한편으로는 휴식시간에 시끌벅적해야할 학교 운동장이 적막으로 둘러싸여 있을 것 같아 마치 공허한 농촌현실을 보는 듯 해 씁쓸하다.

# 트랙터, 콤바인, 트럭 등 운전하며 농사짓는 타이왕국 며느리

억척스레 살아온 삶을 보는듯한 허리가 굽은 엄운선 씨는 탄부면 구암리가 고향이다. 16세 때, 꽃가마 타고 진주 강 씨들이 토박이로 살고 있던 이곳 천남리 각골로 시집왔다. 그 후 64년간을 살아오면서 2남3녀를 낳아 길러 맏아들 응구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처에서 살고 있다.
6.25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국가유공자인 강성복 씨는 하루 일과 중 거의 대부분을 방안에서만 생활한다. 질환으로 인해 8년 전 한쪽 하체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우영이가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뒤에서 밀며 마당을 돈다. 그래도 대화를 나눌 사람이 늘 그립다. 이 날도 6.25전쟁 당시, 통신병으로 활약했던 무용담을 부인 운선 씨의 말막음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을 정도다.
10년 전인 99년, 응구 씨와 펜스리 씨는 인연으로 만났다. 대처에서 건축업에 종사하던 응구 씨는 98년 I. M. F( 아이엠에프)로 인해 실직, 귀향했다. 그리고 선배의 주선으로 강원도 평창에서 통일교 수행을 하던 펜스리 씨와 만나 2000년 2월 잠실체육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초기 3년간은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말도 서툴러 대화도 원만하지 않았고 생전 해보지 않은 농사일도 어려웠고 낯선 한국문화 모든 것이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었지요.”라고 펜스리 씨는 신혼 초를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트랙터, 콤바인, 트럭 등을 운전하며 농사를 짓는 타이왕국 며느리가 됐다.
# ‘사왓디캅’ ‘캅쿤’ 타이 말 배우고 , 근 10년 만에 처갓집 첫 방문

펜스리씨 조국의 정식 명칭은 타이왕국(Kingdom of Thailand)이다. 타이는 입헌군주제로 현재 라마9세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다스리고 있다. 형식적 입헌군주제 일본과는 달리 타이는 국왕이 직접 국가의 큰 행사를 집전하는 등 실권을 행사한다. 심지어 명문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졸업, 학위 식에는 왕비, 왕세자, 공주 등이 직접 증서수여를 한다.
응구, 펜스리 부부의 집 거실 벽면에도 펜스리 씨의 학위수여 기념사진이 부착되어 있다. 이 사진은 지난 72년 왕세자로 책봉되어 차기 국왕이 될 와지랄 롱콘 왕자(57)가 자오페하 대학 졸업식에서 펜스리 씨에게 직접 학위증을 수여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아내가 초등학교부터 중, 고교 모든 과정을 전교 수석을 차지했고, 대학에서도 8등으로 졸업을 했다고 하더라”며 입을 연 응구 씨는 “아내를 쏙 빼닮은 아들 우영이도 머리가 좋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한다.
펜스리 씨의 친정집은 타이의 수도 방콕이다. 새로 지은 수왓나폼 국제공항에서 택시로 30분 거리에 있다. 친정 어머니 파파이 콸라몬 씨는 84세다. 펜스리 씨는 어머니가 이렇게 장수하는 것은 순전히 한국 인삼을 애용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친정 오빠, 언니 2, 남동생 3, 여동생 등도 그래서 모두 한국 인삼 애호가가 됐다.

# 억척스레 농부로 사는 그녀의 꿈은 대학원 공부 더하는 것

응구, 펜스리 가족은 지난 10월, 7박8일 일정으로 방콕을 방문했다. 펜스리 씨는 거의 매년 다녀왔지만 응구 씨와 아들 우영 이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그 전에도 온 가족이 다녀오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문화가정 친정보내기’ 사업 일환으로 왕복 비행기 표가 제공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응구 씨도 대상이었지만 단연 우영이가 독차지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 이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공항택시를 운행하는 쏜푼 콸라몬(42) 외삼촌은 “며칠 안 벌어도 괜찮다”며 매형과 외종질을 위해 택시로 여기저기 관광을 시켜주었다. 오죽하면 우영이가 “아빠 혼자 먼저 한국에 돌아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돌아올 때는 우영 이에게 장난감 선물도 잔뜩 사주었다.
응구, 펜스리 부부는 지칠 정도로 농사일을 많이 한다. 들녘에서 땀을 흘려야만 수확이 가능한 담배, 고추, 들깨, 벼농사 등이다. 그런데 펜스리 씨는 자기네 농사일이 끝난 농한기인데도 인삼밭에 일손으로 일을 나간다. 하루 일당이 4만 원 정도다. “가족 모두의 보험을 들어두었기 때문에 지출이 많고, 조금이라도 더 생활비에 보태려는 것”이라고 펜스리 씨가 설명했다. 맏며느리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 같다. 헤어질 때 쯤 펜스리 씨가 “조금 생활이 나아지면 한국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방그레 웃었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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