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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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을 보던 날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11.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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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오늘, 2010년 대학수학능력평가를 보는 날이다. 수험생은 한창 시험을 보고 있을 텐데, 부모님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녀가 실수하지 않고 잘 보기를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작은애가 수능시험을 보던 날, 아침에 데려다주는 차안에서 아이는 “엄마! 감이 좋아! 시험 잘 볼 것 같아요”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마음은 떨리고 초조한데 그걸 숨기며 “그래! 네 기분이 그러면 잘 볼 것 같구나”그런 대화를 나누며 학교에 도착하였다. 후배들의 응원과 선생님들의 격려를 받으며 그 애는 고사장으로 향했다.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동문의 재수생 엄마를 만났다. 그 분과 마주친 순간, 서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저렇게 씩씩하게 시험장에 들어가는데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착잡한 생각이 내 마음을 약하게 했고, 또 재수생을 1년간 뒷바라지 하면서 그 엄마가 가져야 했던 좌절과 희망 같은 것들이 느껴져 가슴이 싸해지는 아픔으로 가득했다.
마지막 과목인 제2외국어가 끝나는 오후 6시 15분, 그 전부터 학교에 도착하여 사방에 내린 어둠과 함께 서성이는데 거의 30분이 더 경과한 다음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달려가 수고했다며 꼭 안아주며, 차마 ‘시험 잘 봤어?’하고 물을 수는 없고 표정만 살피는데, 아이는 그저 그렇게 봤고 점심에 도시락밥을 남겨 배가 무지 고프니 밥을 먹고 가야겠다고 했다. 이미 정답이 나왔으니까, 큰 애 때처럼 얼른 집에 가서 답안지를 맞춰 보면 좋겠는데, 조급한 우리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애는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많다고 하더니 갈비를 먹자고 했다. 밖에서 밥을 먹은 뒤, 집에 돌아와 시험지 답안을 맞춰본 결과가 나쁘지 않아 안도의 숨을 쉬면서 난 아이에게 말했다.
“넌 이제 시험 끝났으니 찬밥이야. 그리고 내일 엄마생일인데 미역국 끓여줄래?”
기대감 없이 말을 했는데, 아이는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 드릴 테니 미역과 고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난 미역국을 끓이려면 재료는 알아서 하라며 약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뒤, 아이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였고,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친구들과 만나 놀다 온다며 나갔다.
난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이 아팠고, 밤새 헛소리를 하며 끙끙 앓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밥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라면이라도 끓여 보려고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나 방문을 여니 작은애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냐고 물어 보니 그저 웃기만 했다.
주방에 들어가니 아이가 거실에서 하는 말이 자기가 밥을 다 해놓았고 미역국도 끓여놨다고 한다. 가스렌지 위에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미역과 쇠고기가 섞인 미역국이 냄비 반 정도 있었다. 또 다시 전기밥솥을 열어보니 현미를 섞은 밥이 있었다. 난 고마운 마음과 감동이 넘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꼭 안았다.
“너 시험 잘 본 것만으로 엄마 생일선물 충분한데,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어. 너도 시험 보느라고 고생했는데 밥과 미역국을 끓여 놓다니 정말 고마워. 아들이 있어 엄마 정말 행복해”했더니 많이 쑥스러워 했다.
지난밤에 그 애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때가 11가 넘었는데, 마침 정육점이 문을 닫지 않아 고기를 샀고 고기는 바로 통째로 2시간 정도 끓인 다음 고기를 손으로 찢어보니 잘 익은 것 같아 미역을 넣고 끓였다고 했다. 미역은 한 봉지를 다 물에 불려 보니 너무 많아 반만 했다고 했는데 싱크대 위에는 물에 불린 미역이 있었다. 간은 집간장과 약간의 소금으로 했고, 고기를 사는데 정육점 아주머니 말씀이 미역국에 마늘을 넣으면 더 맛있다고 하여 마늘을 넣었단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미역을 팬에 볶다가 하는 것도 있었고 다양했지만 번거로워 엄마가 하던 걸 잘 생각해 보며 끓였고 아주 재미있었다고 했다. 밥은 어떻게 지었냐고 했더니 쌀과 현미가 어디 있는지 알아서 엄마가 하던 대로 쌀을 새벽 3시경에 2시간 정도 불려서 5시경에 밥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했다.
미역국을 먹어보니 아이의 말대로 맛이 좋았다. 그러나 국물은 적고 고기와 미역이 너무 많아 다시 물을 더 붓고 간을 맞춰 끓이면서 즐거웠다. 식탁을 차린 후 아이아빠도 앉았다. 아이로 인해 아이아빠는 자연적으로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아파서 일어나기 힘든 대도 다른 때와 달리 내 생일인데, 아침을 대신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며서운함을 토로 하니 남편은 싱글거리며 아이보고 이제 대학가기 전까지 엄마 대신 살림을 하란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정말 맛이 좋은 미역국을 먹었다.
그 동안 수능준비에 고생이 많았고, 온종일 수능을 치루고 온 작은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한 것은 그냥 한 말인데, 아이는 나의 생일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국과 밥까지 준비했다. 아이가 고기와 미역을 사면서, 그리고 미역국을 어떻게 끓여야 하나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며, 또 고기를 삶고 미역국을 끓이며 밥을 지으며, 엄마인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너무도 행복했고, 손가락 마디까지 아플 정도로 심하게 앓았던 내게 큰 기쁨과 위안을 주었다. 이렇듯 자녀는 크고 작은 기쁨과 아픔을 함께 가져 온다.
통과의례가 된 수능이 끝나서, 많은 통제와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가질지 모르지만 사실 또 다른 과정이 넘치도록 기다리고 있으므로 이제 다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자율적으로 탄력 있게 가꾸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지므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아무튼 오늘 수능을 치룬 수험생과 옆에서 지켜보고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은 부모님 그리고 그 동안 열성적으로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수고가 많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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