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북면 화전 1리 … 160
한낮의 햇살은 벌써 완연한 봄이다. 대안고개를 너머 화전리로 가는 길. 머지않아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마을 지명의 근원이 되는 산이기도 한 꽃다리 봉 아래 자리 잡은 화전리. 봄볕이 따사롭던 19일 오후, 성큼 다가온 봄을 준비하는 화전리 주민들을 만났다. #봄 내음 가득한 마을회관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봄 내음이 가득하다.
마을에서 재배한 큼직한 더덕들이 주민들의 손길에 뽀얀 속살을 들어냈다.
“어이, 기자양반.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봐.”
마을 할머니들이 뽀얀 속살을 드러낸 더덕 한 뿌리를 건네준다.
낯선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던 할머니들이지만 사진기를 들이대는 기자 앞에서는 예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서로의 몸에 얼굴을 파묻었다.
“먹으라는 더덕은 안 먹고, 왜 사진기만 들이대는 겨. 아이구, 난 싫어. 예쁘지도 않은 얼굴, 뭐 하러 사진을 찍으려 해?”
투박한 손끝으로 더덕을 다듬던 할머니의 우스갯소리에 터진 웃음소리가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물처럼 싱싱하게 울려 퍼졌다.
#꽃이 가득한 ‘화전(花田)’
“화전리라는 이름이 왜 붙여졌어요?”
얘기는 자연스럽게 마을 지명에 대한 유래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명과 관련된 화전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도 깨끗이 씻겨졌다.
“대부분 사람들이 불화(火)자를 써서 산에 불을 놓아 들풀과 잡목을 태운 뒤 그곳에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 마을은 불화(火)자가 아닌 꽃화(花)자를 써서 화전(花田)리야. 말 그대로 꽃이 활짝 핀 마을이라는 뜻이지.”
마을에서 노인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현(70) 회장의 얘기는 계속됐다.
국사봉 줄기에서 이어진 마을 뒤 높은 봉우리의 이름은 꽃다리 봉이며, 이곳에는 진달래를 비롯해 철쭉 등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펴 커다란 꽃다리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까지.
또 하나. 화전리라는 지명에는 옛 조상들의 모습도 담겨져 있었다.
“화전리의 옛 지명은 먹골, 묵동(墨洞)이라고도 해. 옛날 이곳에서는 먹을 만들었다고 해 먹골, 묵동이라고도 불렀지.”
향긋한 꽃향기와 은은한 묵향이 교차하는 화전리의 모습에 더 큰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을의 자랑 ‘소나무’
마을회관을 나와 이윤서(64) 이장과 이윤무(52)씨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바로 마을 뒷산이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자랑하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장엄한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보고 있다.
“솔직히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보다 그 자태는 더 훌륭합니다. 굵기도 어른 두 명이 두 팔을 벌려야 할 정도로 굵고요.”
마을의 자랑인 만큼 주민들이 함께 가꾸어 나가겠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뜻이다.
주민들이 함께 가꾸어 나가기 위해 군 보호수로 지정을 받기 위해 신청을 하려다 말았다는 것이 이윤서 이장의 얘기다.
이 아름드리 소나무가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지는 이윤서 이장이 전해주는 일화 속에서 잘 나타난다.
“선대 때, 이 소나무로 관을 짜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나서 ‘이 소나무는 주민들이 위하던 소나무인 만큼 베면 안 된다’는 뜻을 전해 결국 그대로 남겨 두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 소나무는 소중한 지역의 자산인 것입니다.”
#전주이씨 집성촌
20여년 전, 37가구까지 살았던 화전1리지만 현재는 22가구 6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다른 농촌마을처럼 작은 마을이지만 화전1리의 면적은 다른 어느 마을보다 더 크다.
한화 화약공장이 들어선 곳도 바로 화전1리다.
“지금은 철망에 가려져 있지만 화약공장이 세워진 곳에 도끼바위 폭포가 있었습니다. 도끼로 찍은 듯이 가파른 절벽에 물줄기가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주민들이 많이 찾아 갈 정도로 장관을 이뤘습니다. 폭포를 비롯해 화약공장 절반 이상이 화전리에 속한 지역이었죠.”
넓은 터와 함께 화전1리는 전주이씨 집성촌으로도 유명하다.
22가구 중 5가구를 제외한 17가구가 모두 전주이씨다.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만큼 주민들의 단합도 다른 마을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매년 정월 열나흘날, 내북면에서는 유일하게 달집태우기 행사를 펼치고 있는 곳도 바로 화전1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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