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하고 성실한 젊은이가 많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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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하고 성실한 젊은이가 많은 마을
  • 류영우 기자
  • 승인 2009.03.13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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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외면 오대리 (159)

마을을 감싸듯 안고 있는 높은 봉우리를 주민들은 탁주봉이라고 했다. 탁주봉에서 시작된 줄기는 5갈래로 나뉘어 마을로 뻗어 내려왔다. 산외면 오대리. 오대리는 바로 탁주봉에서 내려온 5갈래 줄기 아래에 마을이 터를 잡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옛 고향의 모습 그대로
굽이굽이 골짜기를 지나, 달천을 따라 10여분 달렸을까?
달천을 중심으로 보기 좋게 들어앉은 집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봄의 시작을 알리듯 마을 곳곳에서는 경쾌한 경운기 소리가 들려오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깨끗한 마을의 분위기는 옛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기분 좋게 마을에 들어서자 경로당에서는 장기 한 판이 벌어졌다.
제법 진지하게 진행되던 장기 대결은 결국 박영식(79)씨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제서야 눈을 돌린 마을 어르신들에게 마을 자랑을 부탁했다.
낮선이의 물음에 박영식씨가 꺼낸 첫 마디는 바로 송병관 선생의 얘기였다.

#근면함을 일깨워준 송병관선생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의 일이다.
오대리를 비롯해 지역 전체가 큰 가뭄을 겪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배고픔에 괴로워했고, 삶의 희망까지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마을 주민들이 굶어 죽을 상황까지에 이르자 송병관 선생은 마을주민들을 살릴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지역에서 가장 부자였던 송병관 선생은 주민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품삯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저수지다.

송병관 선생은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 위쪽에 저수지를 만들기로 하고, 오대리를 비롯해 원평, 산대, 길탕 주민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품삯을 후하게 줬다.
송병관 선생의 노력으로 주민들은 배고픔을 이겨낼 품삯을 받게 됐고, 마을에는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저수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송병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오대리를 비롯해 원평, 산대, 길탕 주민들은 힘을 모아 마을 앞에 공덕비를 세웠다.

▲ 주민들에게 일하는 의미를 일깨워준 송병관 선생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오대리를 비롯해 원평, 산대, 길탕 주민들은 힘을 모아 공덕비를 세웠다.

#근면한 전통 이어가는 마을
주민들에게 일하는 의미를 일깨워준 송병관 선생의 노력 때문일까?
산외면 오대리는 지금까지도 근면, 성실한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오대리로는 시집도 안 보낸다”고 할 정도로 일이 많은 마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이 많은 만큼 주민들은 부농을 꿈꾸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는 4, 50대 젊은 주민들의 힘이 크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문재근(43)씨는 담배 농사만 30단(9천평, 2만9천750㎡)을 짓고 있고, 사과농사도 3천평(9천917㎡)을 짓고 있다.

문씨 뿐만이 아니다.
새마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재문(45)씨도 문씨와 마찬가지로 담배 농사만 30단(9천평, 2만9천750㎡)을 짓고 있고, 노정호(44)씨 또한 30단의 면적에 담배농사를 지으며 부농을 일구고 있다.

송재승(54) 이장은 1만7천평(5만6천190㎡)의 면적에 인삼농사를 짓고 있고, 김규원(53)씨는 2천500평(8천263㎡)에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부농을 일구고 있는 오대리의 젊은 농민들은 소득뿐만 아니라 마을을 지키고 이끌어가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마을을 이끄는 힘 ‘오향회’
오대리 향우들의 모임인 ‘오향회(대표 송재승, 오대리 마을 이장)’는 오대리 마을을 이끌어가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노령화되고 있는 농촌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자는 뜻으로 결성된 오향회는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좋은 일에는 빠져도 벌금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상이 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참가하지 않으면 많은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죠.”

송재승 이장의 얘기처럼 오향회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마을의 궂은 일에 젊은 사람들의 힘을 모으자는데 있다.

마을 내 젊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오향회는 이제 출향인들까지 참여하는 마을을 대표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32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오대리 마을에서 오향회는 27명의 회원을 확보, 한 가구당 한 사람 이상이 모임에 참여하며 마을일을 돕고 있는 것이다.

▲ 기분좋게 마을에 들어서자 경로당에서는 장기 한 판이 벌어졌다. 제법 진지하게 진행되던 장기대결은 결국 박영식씨의 승리로 끝이 났다.

#출향인들의 마을 사랑
마을의 젊은 주민들과 함께 성공한 출향인들은 오대리 마을의 큰 자랑이다.
서울에서 플라스틱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준기(75)씨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많은 도움을 준 출향인 중 한 명이다.

10여년 전 마을에 큰 일이 생겼을 때 700만원의 큰 돈을 내 놓은 것도 정씨이고, 마을 앞 도로를 개설할 때 땅을 구입해 길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도 정씨다.

정씨와 함께 순흥물산이라는 주류 도매업을 하고 있는 김소래(70)씨도 크고 작은 마을일에 앞장서서 도움을 주는 출향인이다.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
오대리는 예부터 산 좋고, 물 좋고, 토지가 비옥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마을 주민들은 오대리를 가르켜 “가뭄도 모르고, 연료 걱정도 없고, 재해도 없는, 장작불에 이팝 해먹는 동네”라고 말했다.

이처럼 비옥한 땅에 주민들의 성실함까지 곁들여져, 오대리 마을은 주민뿐 아니라 마을기금도 다른 마을이 부러워 할 정도로 풍요롭다.

현재 마을 기금으로 적립된 기금은 모두 1억2천만원이며, 이는 지난해 마을기금으로 1천500평(4천958㎡)의 토지를 구입하고도 남은 액수다.

#아름다운 자연도 함께
비옥한 토양과 함께 오대리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함께 갖추고 있다.
마을의 끝자락에 원평리와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솔정재는 깨끗한 달천과 함께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인해 여름철 피서객들로 붐비는 지역 중 하나다.

“옛날에는 그곳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죠. 지금은 느티나무만이 남았지만 시원한 나무그늘을 이뤄 한 여름에는 도로변에 2, 30대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달천 변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합니다.”

정명기(74)씨가 자랑하는 마을의 명소는 또 있다.
바로 각각의 마을을 상징하는 커다란 둥구나무다.

오대리는 달천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개 마을로 나뉜다.
달천을 중심으로 탁주봉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은 오대마을이고, 매봉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은 신흥마을이다.

이 두개 마을에는 각각 마을을 상징하는 커다란 둥구나무가 있고, 이 둥구나무는 오랜 세월 주민들과 함께 해 오며 많은 추억들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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