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내북면 용수리(수적동)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인척이 있어서 가끔 들르고 하는 마을이다.
내북면 아곡리를 거쳐서 산 고개를 넘어야 갈수 있는 교통이 아주 좋지 않은 마을이었다. 약 20여 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살던 이 마을은 인심 좋고, 땅이 비옥하여 곡식이 잘 자라 교통이 불편한 것 외에는 살기가 좋은 마을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내북 상궁-수한 차정 간 군도가 생기면서 수적동 마을에도 활력이 생겼다.
내북 상궁∼수적동 간 마을 진입로가 폭 5m의 넓이로 확 포장 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시내버스가 하루에 3번씩 수적동 마을을 경유해 거의 노인들뿐인 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예전에는 시골 마을에 마을 진입로를 확포장 할 때에 도로에 편입되는 토지 보상을 해 주지않고 공사를 한 것이 대부분 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내 마을 길을 좋게 만들어 준다는 데 내 것이 아무리 소중하여도 마을 사람들은 땅을 선뜻 내 놓아 마을 진입로를 포장을 했다.
그렇게 길을 닦아 놓으니 마을에 시내버스가 들어오고 농기계 이용도 편리해지고 농촌 오지 마을도 살기 편리해 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수적동 마을 진입로를 중간쯤 가다보면 대략 20여 미터 가량이 포장이 안된 곳이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더니 그 마을에 살던 김아무씨가 땅은 그곳에 두고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땅주인 김씨가 마을 진입로에 편입되는 땅을 내어주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약 20m가량을 띄어놓고 도로포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나다 보면 보기 싫게 남아있는 비포장길과 포장된길의 턱을 없애려고 어디에서 쓰다 남은 콘크리트 인지 아무렇게 쏟아 놓은 것이보인다.
불편함은 물론 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지날 때 마다 한 마디씩 했을 것이고, 외지인들도 그곳을 지나다가 한 마디씩 했을 것이고,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그 땅 주인을 제 멋대로들 평가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땅 주인의 속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찌했든 그분은 자기의 소중한 땅을 지키는 데 성공 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자기의 소중한 것은 지켜 냈지만 인간의 짧은 인생 에 있어서 지켜낸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은 없었는지 뒤 돌아 보면 어떨까?
사람이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남의 땅을 밟지 않고는 아무 곳도 갈수 없으니까.
전석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