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형적인 농촌마을 대부분 그렇지만 마을은 절대로 그냥 생기는 법이 없다. 하천과 산, 터의 이로움과 불편을 보고 사람이 자연과 가장 원만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마을이 들어서 있다.
내북면 성티리 마을도 그랬다.
마을 앞으로 작은 하천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이름도 친근한 ‘뒷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고 있는 이상향이 그림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풍경이다.
내북면 성티리는 여기에 몇 가지 조화로움을 더했다.
마을 앞쪽으로는 ‘앞산’과 ‘샘건너 산’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고, 동쪽으로는 ‘노루고개’, 서쪽으로는 일명 ‘서낭’이라고 불리는 ‘대안고개’가 푸근하게 마을을 품는다.
◆청주를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
동서남북 네 곳에 길이 뚫려있고, 네 개의 고개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곳 성티(星峙).
겨울을 준비하는 마을은 꽤 조용했다. 마을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조용함이 아쉽기도 했지만 사실 마을에 활력이 넘치던 모습은 그리 오랜 이야기가 아니다.
청주를 연결하는 19호선 국도가 생기기 전, 이곳 성티는 보은과 청주를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보은 장이 서면, 소를 몰고 청주로 향하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던 곳이 바로 이곳 성티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주막거리도 형성됐다. 소를 몰고 대안고개를 넘었던 사람들은 주막거리에서 시원한 탁주를 마시며 지친 몸을 달랜 후 노루고개를 넘어 청주로 향했다.
동쪽과 서쪽으로만 길이 뚫린 것만은 아니다. 북쪽의 찬 바람을 막아주는 앞산과 샘건너 산 사이로 냉한 바람이 항상 불어온다는 뜻의 냉갱이 골짜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뒷산 사이로는 이원리 백운동을 연결하는 고개가 있어 이곳을 넘어 땔감을 구하던 성티 주민들의 추억이 담겨져 있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사람들
지금은 성티라고 부르지만 오래 전, 이곳은 비재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마을이 너무 못살아 비지만 먹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고, 넓은 땅 조차 없는 마을로 비록 주민들의 삶은 가난했지만 성품만은 정직했다.
내가 하루를 굶을망정 남에게 빚은 지자 말자는 것이 바로 이곳 성티마을 주민들의 모습이다.
몇 해 전까지 내북면 창리에 시장이 형성되던 시절, 성티에서 왔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물건을 내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곳 성티리 주민들은 검소하고 정직했다.
이런 주민들의 성품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지역에서 존경을 받은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보은농고 2학년을 마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화제가 됐던 신광호(72)씨도 성티마을 출신이고,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전 신창재 내북면장도 성티마을 출신이다.
인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명환씨는 매년 마을주민들을 위해 관광여비를 보태는 등 꾸준한 고향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래도 젊은 마을
이곳 성티마을에는 25가구, 51명의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여느 농촌마을처럼 이곳도 홀로사는 노인분들이 비중이 마을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5가구 중 홀로 생활하고 있는 노인분들이 7가구나 된다.
하지만 이곳 성티마을은 젊은 마을에 속한다.
농촌마을에서 젊은이(?)의 기준이 되고 있는 60대 미만의 주민들이 꽤 있다는 얘기다. 25가구 중 60대는 2가구, 그리고 60대 미만 가구수도 5가구에 이른다. 이런 젊은 주민들이 중심이 돼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양계를 하고 있는 허규산(57)씨를 비롯해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이장희(51), 김인철(49)씨가 대표적인 마을의 젊은이들이다.
◆물이 좋은 마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어서인지, 이곳 성티는 예부터 물이 좋은 마을로 통했다. 100년도 넘은 아름드리 향나무 아래에 위치한 우물은 마을주민 전체가 사용했던 옛 명성을 계속해서 이어가며 지금까지도 그 맥이 살아 있다.
향나무 아래에서 지금까지 맥을 유지하고 있는 우물과 함께 ‘물탕’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그 효능을 자랑한다.
죽은 뱀을 보고 오면 구렁이가 물 흐름을 막아 물이 안 내려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곳이기도 한 물탕은 “여름에 땀띠가 없어진다는 얘기 때문에 대전 등 소문을 듣고 찾는 외지인들이 수제비나 국수를 끓여 먹는 곳”이라는 것이 김용정 이장의 설명이다.
이런 물의 효능때문일까? 성티마을에는 건강하게 생활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올해 82의 김홍준 할아버지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담배농사를 아직도 직접 짓고 있으며, 81세의 김홍진 할아버지도 육식을 비하고, 직접 키운 야채만 먹으며 건강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옛 추억속으로…
어린시절, 아이들의 발길을 이끌던 추억의 장소는 마을마다 한 군데씩은 꼭 있다. 성티마을 주민들의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장소는 바로 서낭이다.
청주로 향하는 상인들이 꼭 쉬어가는 곳이기도 한 서낭은 마을에서 1, 5km 이상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하루에 한 번은 꼭 이곳을 찾았다.
바로 이곳에 엿장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엿장수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 서낭이라면 어른들에게는 연탄을 지어 나르던 힘겨웠던 장소가 바로 서낭이다.
담배농사를 많이 짓던 옛날, 주민들은 땔감을 대신하기 위해 연탄을 직접 지고, 이곳 서낭을 넘었다고 한다. 50가구 이상이 살던 옛날에는 나무가 귀해 담배를 말리기 위한 땔감은 연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힘들게 살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살기 좋은 마을로 변해가고 있는 내북면 성티마을.
정직하고 검소한 마을주민들의 성품만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