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이 지나갔던 오그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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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이 지나갔던 오그내 마을
  • 곽주희
  • 승인 2008.09.12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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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45) 마로면 오천1리 
▲ 1998년 3월 오천1·2리 주민일동으로 보호수인 느티나무 옆에 세운 마을자랑비.

한 낮의 온도가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 돼 수확한 참깨나 고추 등 농작물을 말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확기를 맞아 농사일에 바쁜 농민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가 얄밉기도 하다.

30도를 넘은 날씨속에 차의 에어컨을 세게 틀고 지난 9일 마로면 오천1리를 찾았다.

# 오천1리 찾아오는 길

보은읍에서 상주방면으로 25번국도를 따라 20여분 달리다 보면 마로면 면소재지인 관기리가 나온다.

그 곳에서 505번 지방도를 따라 청산방면으로 10여분 가다보면 오천교 우측으로 다시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가 나타난다.

그 곳에서 2∼3분 가다보면 골짜기안에 넓은 들과 함께 산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오천1리이다.

# 오천1리 마을의 유래

오천1리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서기 1361년) 북쪽의 홍건적을 피하여 수도인 개성을 버리고 경상도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에서 몽진(蒙塵 : 머리에 먼지를 쓴다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떠남), 홍건적을 물리치고 환도(還都 : 전쟁 따위의 국난으로 인하여 임금이 한 때 수도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옛 수도로 돌아옴)길에 오를 때 관기(官基)에서 주필(駐킞 : 임금이 거둥하는 중간에 어가(御駕)를 멈추고 머무르거나 묵던 일)하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 마을을 경유, 원남(元南)을 지나 환행(還幸 : 임금이나 왕비, 왕자 등이 대궐로 돌아옴)하였다 한다.

그 후 이 마을을 나 오(吾) 임군 군(君) 올 래(來)자를 붙여 오군래(吾君來) 또는 오천리(吾川里)라 불리어지고 공민왕이 넘었다는 왕래재, 대왕산, 태자봉이 마을 서쪽에 우뚝서 있다.

오천1리 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중에서 제일 으뜸인 봉우리를 대왕산이라 부른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관기리에 머무르다 이곳을 지나 지금의 원남으로 가셨다고 하는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기록에는 어느 시대의 왕인지는 모르지만 이 산에서 대왕이 났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한편 오천1리 주변 산봉우리에는 대왕산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데 이것은 대왕산이 왕을 의미하므로 곳곳에 왕을 보필하는 지명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대왕산의 아들 격인 태자봉이 있으며, 태자가 왕의 만수무강을 위해 기도를 올린 곳이라는 만수봉 등이 있다.

세월이 흐름에 오군래가 오구내라 불리우고 오천리(吾川里)가 梧川里라 쓰여지고 있으며, 1940년대인 일제 말기에는 일명 금동(金洞)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오천1리는 오그내라고도 불린다.

오그내라는 지명은 공민왕이 지나갔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원래는 오군래에서 오구내, 오그내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변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마을에 작은 하천(川)가 있으므로 오그내 또는 오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한편 지금의 오천이란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주민들에 따르면 그 이름이 지어진 것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주변에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동나무 오(梧)자와 내 천(川)자를 합쳐 오천리라 했다고 한다.

오천1리는 면적 3.64㎢로 마로면의 동남쪽에 있으며, 동쪽은 기대·원정리, 서는 탄부 성지·삼승 천남리, 남은 옥천군 청산면 만월리, 북은 탄부면 대양리와 인접하고 있다.

오천1리는 두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금동과 중뜸이다. 금동이라는 명칭은 마을에서 금과 동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석광산에서 예전에 금과 동을 캤다고 한다. 1959년부터 채광하였으나 지금은 폐광되었다고 한다.

중뜸은 오천2리 마을과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오천1리에는 노인회장 이모업(80)옹을 비롯해 이장 이성철(47)씨, 부녀회장 어복식(61)씨, 새마을지도자 임성호(47)씨 등 60여명이 32호를 이루며 살고 있다.

# 4∼50대 젊은 사람 많아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고령화되어 있지만 오천1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총 32호 중 11호가 60대 미만이다. 이중 50대 미만이 6호나 된다.

이성철 이장은 “3가구가 이농했는데 모두 4∼50대다. 다른 마을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초등학생 3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4명 등 학생들도 1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천1리 주민들은 지난 91년도에 대동계(상여계)를 조직해 마을주민 전체가 가입해 있다.

대동계에서는 마을의 모든 애경사를 비롯해 마을의 현안 문제 등 주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마을 전체가 하나의 구심점을 갖고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는 것은 이 마을이 강진 이씨(康津 李氏) 집성촌이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은 단지 집성촌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모두가 이웃사촌이며 예전부터 한가족처럼 지내와 화합과 단결이 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부녀회 마을의 활력소

부녀회는 마을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

지난 74년 전기가설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 집집마다 불빛을 밝혀 주었으며, 지금도 농약 빈병, 폐비닐 등 폐품 수집을 통한 기금 조성으로 해마다 마을 경로잔치와 효도관광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경로당 건립기금으로도 300만원을 기증하는 등 마을의 각종 일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특히 어복식 부녀회장은 지난 11년째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김치를 담아 면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달라며 면사무소에 기증하는 등 아름다운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마을에는 청년회가 조직되어 있다. 오천1.2리 통합 청년회(회장 이태희, 총무 이상수)다.

매년 열리는 마로면 청년 체육대회에 참가를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그 목적외에 마을 일에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한다.

# 가로등 설치, 시내버스 마을경유 바람

오천1리 앞에는 보청천이 흐른다. 보청천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다.

특히 기대리 앞 냇가에서 원정리로 이어지는 보청천에는 다슬기(올갱이)와 동자개(일명 빠가사리), 송사리(일명 중태기) 등의 민물고기도 서식하고 있어 가족과 함께 고기를 낚아 만든 찌개 한 냄비는 저녁식사를 맛나게 하고 흡족한 술안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을주민들에게는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피서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나, 쓰레기 수거함이 없어 마을 입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성철 이장은 “여름철만 되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 마을입구 시내버스 승강장 주변과 다리밑에는 온통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쓰레기 중에는 마약주사같은 것도 발견돼 불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마을까지 한 1㎞정도 떨어져 있는 데 가로등은 불과 3개밖에 없어 너무 어두워 주민들이나 학생들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성철 이장은 “승강장에서 마을로 오는 길에 있는 나무들을 솎아 냈다. 가로등은 있지만 나무들이 너무 우거져 깜깜하기 때문에 밤늦게 오는 학생들이나 주민들의 안전에 해가 될까봐 나무들을 베어 버렸다. 나무를 베어 내기 전에는 승강장까지 마중을 나가 아이들을 데려 왔다. 가로등 3개 정도만 더 설치해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조금 더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주민들의 바람은 한가지가 더 있었다.

오천1리에는 올해부터 4번 마을에 시내버스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전에는 마을에서 505번 지방도까지 걸어나와 버스를 탔다고 한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학생 8명(오천1리 7명, 오천2리 1명)이 있다보니 학부모들은 힘이 든다고 한다.

마을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 첫 차가 9시30분으로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맞지 않아 7시20분 시내버스를 타기위해 걸어서 마을입구 승강장까지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성철 이장은 “학생이나 부모들이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먹는 등 힘들다” 며 “어렵겠지만 학생들의 등·하교 편의를 위해 아침 7시20분 버스와 막차인 저녁 7시 버스가 마을을 경유해 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어려움속에 희망을 꿈꾼다

오천1리도 젊은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렵지만 오천1리는 희망을 꿈꾸고 있다.

이성철 이장은 “지난해 산촌마을을 신청해 선정이 되지 않아 올해 다시 신청을 할 계획이다. 산에 더덕과 두릅을 심어 외지인들을 끌여 들일 생각이다. 원래 마을 뒷산에 산나물이 많아 그것을 캐기 위해 외지인들이 많이 몰려들어 시내버스가 다니지 못할 정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성철 이장은 산촌마을 신청과 함께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판로 개척과 제값받기를 위해 1사1촌 자매결연은 물론 유기농식품을 취급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어 포도, 된장, 쌀 등을 납품할 수 있도록 마을 전체 저농약 품질인증을 받는 등 다각도로 마을의 발전과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등으로 오천1리 마을 전체가 부농의 꿈을 키웠지만 여의치 못했고, 지금은 무농약이나 저농약 품질인증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아름다운 마을로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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