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싣는 순서 |
1. 마을만들기, 주민 주도형이어야 성공 |
2. 동네가 숨을 쉬고 있다-전북 진안군 |
3. 마을 개발 주민이 주도-경기도 양평 신론리 |
4. 마을 개발 주민이 주도-제주도 저지마을 |
5. 마을 개발 주민이 주도-제주 예래마을 |
6. 지역인재가 마을 개발 주도-경북 군위 한밤마을 |
7. 마을 만들기 유래지 일본에서 배운다-일본 유후인 |
8. 살고싶은 마을만들기 위한 토론회 |
각종 보조금으로 진행되는 개발사업의 경우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이전투구 양상으로 변질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보조금을 눈먼 돈으로 여겨 지역보다는 개인의 이익만을 좇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개발 사업이 오히려 지역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주범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동체 의식이 싹 틀 수도 있다.
참여정부 들어 본격 시작된 공모사업을 통한 지원 사업은 어쨌든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으로의 전향적인 변모를 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각종 마을 만들기 사업만 해도 공무원들이 차려준 밥상을 앉아서 받는 게 아니다.
일단 사업을 공무원들이 따냈다 해도 다시 사업 구상을 하고 그 사업 곳곳에 주민들의 아이디어가 담긴다.
하지만 아직 우리지역의 경우 주민 역량 부족으로 컨설팅 회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인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고자 하는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은 일단 지역에 인재가 있다는 점에서 사업의 절반이 추진됐다고 볼 수 있다.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상향방식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살려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경북 군위면 부계면 한밤마을을 소개한다.
대구와 3, 40분대에 위치하고 있는 한밤마을은 일제가 행정구역 이름을 한자로 정비하기 오래 전부터 정겹게 써 온 예스런 마을 이름이 있었으나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큰 대(大)자에 밤 율(栗)자를 쓰는 대율리(大栗里)로 바뀌었다.
한밤마을. 집집이 오래된 돌담으로 둘러싸인 동네다. 고샅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기 힘든 미로와 같다.
◆지역인재는 지역의 보물
양반고을로 이름이 났던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 집성촌이다.
일찍이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았던 마을에서는 자녀들이 대구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받게 했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공한(?) 출향인들은 60대 나이가 되었고, 부모들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는 고향마을을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 성공한 출향인들은 ‘이제는 돌아와 쉴’ 고향마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현재 한밤마을 만들기 사업의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대일 전 계명대 교수가 있다.
역시 대구와 고향 한밤마을을 오가며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홍원식 계명대 철학과 교수도 홍대일 추진위원장과 뜻을 같이 하고 있다.
홍원식 교수는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집필 중인 제자 예중열씨를 마을의 사무장으로 소개했다.
지역 인재들이 뭉쳐 한밤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홍대일 교수가 마을 만들기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공동체 복원이다.
그리고 옛날 생태환경이 잘 보존되고 아름다웠던 마을로 복원하는 것이다.
홍 위원장이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시 고향으로 들어와 살기 위해 대구와 고향마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부터다.
홍 위원장은 고향의 발전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정부가 공모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다.
스스로 사업계획을 꾸며 군위군에 신청하고 정부에 지원, 2007년 사업을 따낸 것이다.
홍 위원장은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운영위원회를 만들었고, 모든 사업의 결정은 운영위원회를 통하도록 하면서 사업 설명을 하고 비전 제시로 주민 설득 작업에 들어가고 주민과 함께 마을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했다.
그 결과 미래 전망이 밝은 마을을 만드는데 주민들을 동참 이끌어낼 수 있었다.
◆교육으로 공동체 의식 강화
한밤 마을은 담을 경계로 하는 가구 대부분이부림 홍씨 한 할아버지 자손이라는 혈연의식은 강했지만 마을의 문제나 사업에 있어서는 개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마을 단위의 주인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은 약했다.
이를 깬 것이 바로 교육이었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농촌공사에서 농촌개발을 위한 특성화 전략 교육에서부터 지역재단에서 운영하는 리더십 교육, 한국 생산성본부에서 해설사 양성교육 등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밤마을에서 이같이 주민교육에 주안을 둔 것은 마을 만들기의 목표를 각종 시설을 설치하는 하드웨어 보다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물론 마을 만들기 사업이 그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경제적 부를 창출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경제적인 부(富)만 쫓는 시설물 설치에 주력하다보면 그야말로 농촌 마을이 가질 수 있는 공동체 문화는 산산이 깨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수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주민들은 각자가 교육 전도사가 됐다. 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강사가 돼서 교육도 하고 사업 설명회도 하는 등 능동적인 지역의 리더들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었다.
이 바람에 단순한 혈연공동체였던 한밤마을은 지역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한밤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회 홍대일 위원장(대구 계명대 교수)은 “생각을 바꿔야 마을발전의 기틀을 세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주민들을 위한 교육부터 시작했다”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교육을 통한 주민 화합은 옛날 한옥문화에서 가족간 소통공간으로 볼 수 있는 대청(大廳)에서도 나타난다.
한밤 마을의 대청은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는 시조를 읊고 토론을 하고 풍류를 즐기던 상류 양반문화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그 잔유물이지만 지금은 주민 화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회의도 하고 여름철 오수도 즐기고 담소도 나누고 마을 잔치도 여는 등 주민 화합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던 대청은 이번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주민 회의 장소로 100분 활용됐다.
◆돌담은 마을의 최고 가치
한밤마을은 미로처럼 엮인 돌담과 고샅길이 농촌의 맛을 더욱 나게 한다.
이 돌담들은 전문 장인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세대를 이어가며 쌓은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주민들도 이를 최고의 상품으로 여기고 있다.
주민들은 문화재청에서 돌담을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자 “주민생활과 지역 개발에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며 “등록되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돌담길은 잘 보존할 것”이라며 문화재 등록을 반대해 더 이상 진전이 없다.
현재 한밤마을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내년도 지역민속문화의 해 대상지역은 선정돼 마을에는 민속자료 조사를 위한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있다.
돌담은 이 오래된 마을을 살다간 백성들의 애환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이 마을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주민들 말대로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더라도 그동안 조상의 문화유산을 잘 지키고 보존해왔던 것처럼 보전되리라 본다.
◆마을 발전의 동반자 출향인
한밤마을의 출향인은 마을 자산이기도 하다.
부림 홍씨 집성촌이기 때문에 윗대로 올라가면 대부분 한 집안 사람들이다.
대학교수와 기업인 등 10여명은 뜻을 모아 고향발전을 위한 향우회도 결성했다.
분기에 한 번 이상 모임을 갖고 마을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낸다.
향우회에는 현재 마을 만들기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대일 계명대 화학과 교수를 비롯해 홍경흠 동국대 경영학과 명예 교수, 홍원식 계명대 철학과 교수, 홍동권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홍우흠 영남대 한문학과 교수, 홍기흠 전 대구은행장, 홍진규 바이오벤처기업 사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돌담문화축제도 개최했다. 행정기관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출향인들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이 행사비용을 마련하고 일정까지 스스로 짰다.
고장 사람들이 등지는 곳에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없다고 생각한 향우회는 출향인들이 먼저 고향을 찾아야 한다며 외지에서 살고 있는 출향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 3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축제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지난해와 올해 정월 대보름에는 달맞이 축제도 개최했다.
마을 발전을 위한 많은 성금도 모금했다.
오는 10월에는 돌 문화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한밤마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돌담길 보전은 물론 돌담과 어울리는 건축양식에 대해 학술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이들의 관심은 또 있다. 재학생이 28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몰린 모교 대율초등학교를 살리는 것이다.
출향인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실시해 사립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경북 교육청과도 협의하고 있다.
고향을 되살리는 게 마을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의 몫만은 아니고 출향인도 곧 마을의 주민이라는 입장에서 고향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한밤마을의 밝은 미래가 엿보였다.
우리지역에서 출향인들을 지역발전의 동반자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손님이 아니라 마을의 주민이라는 입장에서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출향인들을 가진 한밤 마을 주민들의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