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43) 산외면 동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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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43) 산외면 동화리
  • 곽주희
  • 승인 2008.08.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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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주막이 있었던 명당터 마을
▲ 동화리에 있는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80년대 화재로 피해를 입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쓰러지는 것을 주민들이 전봇대로 받쳐 놓았다. 소생하기 힘들 것으로 보았으나 지금 수세를 회복해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 23일 처서가 지나고 온갖 곡식들이 익어가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성큼 다가 온 느낌이다.
들녘에는 고추와 참깨 등 농작물을 수확하느라 농부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으며, 햇살마저 따갑게 내리쬐어 논에는 벼이삭이 시나브로 영글어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다 못해 한기가 느껴지고 낮에는 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등 일교차가 심해지고 있는 지난 25일 동화리 마을을 찾아 나섰다.

# 동화리 찾아 가는 길
보은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10여분 달리다 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그 곳에서 우측으로 575번 지방도를 따라 산외면소재지인 구티리를 지나 구티재를 넘어 가면 탁 트인 들판이 나온다. 구티고개 정상에서 좌측은 탁주리고 우측이 동화리다. 동화리 마을은 도로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동화리 시내버스 정류장을 가기 전 하우스 파이프를 연결해 만든 터널이 나온다.  이곳에 조롱박을 식재해 조롱박 터널을 조성, 도로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이 하우스 파이프만 있어 황량하기만 했다.

# 동화리 마을의 유래
동화리는 산외면소재지 동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장갑2리, 서쪽은 탁주리, 남쪽은 백석1리, 북쪽은 원평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부터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 지형이 묏자리로 비교하자면 목 부분에 해당되어 동아목이라 지칭하다 다시 동화목으로 변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부평리라는 동네 일부를 흡수하여 동화리라 했다.  현재 마을은 고제, 웃말, 웃골, 아랫말, 웃골말, 황곳말로 구분되어 있는데 고제에 2가구, 웃말에 10가구, 웃골에 1가구, 아랫말에 5가구, 웃골말에 2가구, 황곳말에 1가구 등 총 22가구 38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나지막한 언덕이 지금은 동화리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만큼 저마다 이름을 달고 있다.  지금의 마을입구에 위치한 들녘을 금밭들이라 하는데 이 금밭들은 예전에 금이 나왔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화리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지봉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두개의 네모난 바위가 버티고 있다.
이 두 개의 바위 아래 70년대 만해도 절(암자)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불당터라고 부르고 있다. 
이 불당터에 오르면 동화마을 뿐만 아니라 인근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창수 이장은 “70년대 만해도 절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때 절이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 볼 수 있다. 그 후 아랫말에 있었다가 다시 웃말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마을봉사자로는 이창수(50) 이장, 최화섭(46) 지도자, 김청자(69) 부녀회장, 김부조(70) 노인회장이 살기 좋은 마을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동화리 황곳말에 있었던 주막자리. 지금은 담배밭으로 변했지만 예전 동화리와 인근 마을 주민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이곳 주막에 들러 술 한 잔 마시며 그 날의 피로를 말끔히 풀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 주막, 물레방아 있던 마을
하루 일을 마치고 황곳말 주막에 들러 술 한 잔을 마시던 기억이 있던 사람은 동화리와 인연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주막이 있던 자리가 담배 밭으로 변해 있지만 예전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막걸리 한 잔에 피로를 풀던 추억이 있던 곳이다.  청주에 나가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을 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는 동화리 토박이 이창수 이장은 주막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이 있는 듯 노름을 많이 하던 곳이라고만 말한다.  그렇지만 동화리에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오늘도 외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이 찾아올 때면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동네 입구에 위치해 있던 황곳말 주막에서의 추억이라며 과거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고 한다.  마을의 지형이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어 동화리 주민들에게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을 북쪽 장갑리와 경계를 이루는 하천인 달천이 있는데 이 하천의 물을 수로를 이용, 마을 위쪽에 위치한 동화목 소류지를 넘어 그 위에 농경지까지 물줄기를 연결했다.  동화목 소류지는 구릉지로 형성된 들녘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지금은 바닥에 토사가 많이 쌓여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은 속리산 알프스 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는 달천에는 칼바위라는 바위모양이 칼날과 같이 생겨 붙여진 바위가 있다.  이 칼바위 아래는 보가 있어 항상 물이 가득 고여 있다.  60년 전에는 이 칼바위아래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물레방아는 동화리 뿐만 아니라 인근 동네 주민들이 방아를 찍기 위해 이 칼바위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동화리로 연결하는 양수장 시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칼바위 아래 하천에는 인근 대도시 피서객들이 몰려와 놀다가는 피서지로 변했다.

▲ 동화리에 있는 칼바위. 예전 물레방아가 있어 동화리 뿐만 아니라 인근 동네 주민들이 방아를 찍기 위해 이 칼바위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예전 물레방아가 있었던 자리에는 동화리로 연결하는 양수장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 느티나무 다시 살아나 마을 지켜
탁주리를 지나 우측으로 콘크리트 포장된 농로를 따라 400여m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온다.  이 느티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수령이 500년은 훨씬 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나무는 지난 80년대 설날(구정) 무렵 화재로 나무의 절반이 타는 피해를 입어 한쪽으로 기울어져 쓰러지는 것을 마을주민들이 전봇대로 받쳐 놓았다.

이창수 이장은 “예전 마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다시 소생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수세를 회복해 마을을 잘 지키고 있다. 예전 동화리도 50가구 300여명이 살았던 곳으로 느티나무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마을이 다시 예전처럼 영화를 누릴 수 있으려는지…”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 웅장함을 자랑했던 이 느티나무가 수난의 세월을 겪어오면서 현재의 모습 자체가 이 마을이 번창했던 과거의 모습에서 현재 절반으로 줄어들은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 일제시대, 6.25전쟁 때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던 명당터
동화리에서 태어나 잠시 외지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창수 이장은 “젊은 시절 동화리는 50호가 다되어 젊은 사람들이 40여명이 있었다. 지금은 38명 중 11명을 빼고는 다 65세 이상 노인이다” 며 “그 때 인근 마을과 정월대보름이 되면 쥐불놀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창수 이장은 “우리 마을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때도 당시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며 명당터임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주민들이 모여 윷놀이 등 행사를 개촤한다고 한다.

# 부녀회, 친목계 마을의 활력소
현재 동화리는 20여 농가가 예전의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으며, 고추와 쌀, 참깨, 고구마, 담배(한집에서만 재배) 농사를 지으며 생활해 나가고 있다.
겨울이면 부녀회에서 마을 경로당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녀회기금으로 쌀을 사 공동 생활하는데 보탬을 주었다고 한다.
부녀회에서 폐비닐과 농약병 등 폐품을 수집해 모은 기금으로 쌀을 샀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향인들도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베풀어 주고 있으며, 마을주민들도 어르신들을 위해 효도관광보다는 회나 오리고기, 삼겹살 등 푸짐하게 드실 수 있도록 회식을 시켜드리고 있다고 한다.
마을에는 두 개의 친목계가 있다고 한다. 친목계에서 마을의 애사시 장례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 간이상수도 설치 바람 동화리 마을주민들도 바람이 있었다.
마을 안길은 오래되어 콘크리트 포장이 군데군데 패여 다시 포장해야 하지만 올해 면사무소에서 마을입구에서부터 아랫말 느티나무까지 450여m를 아스콘 포장해 준다고 해서 한 걱정을 덜었다고 한다.
그러나 식수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현재 6개 우물과 자가수도를 놓아 식수로 쓰고 있으나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질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창수 이장은 “절(암자)이 있던 불당터에 물이 풍부해 그 곳에서 논에 물을 대 농사를 지을 정도로 지금도 물이 풍부하다” 며 “그곳에 암반관정을 파 간이상수도를 설치했으면 좋겠다. 현재 면사무소에 얘기했는데 우리 마을이 순서가 7번째라는 얘기를 들었다. 언제나 주민들이 깨끗한 식수를 마음껏 먹으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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