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18)-회남면 법수2리(우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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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18)-회남면 법수2리(우무동)
  • 송진선 기자
  • 승인 2008.01.1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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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 노인들만 사는 마을

자연마을명으로 우무동(牛舞洞)이라 불리고 법수1리와도 1.5㎞이상 떨어져 있는 법수2리. 행정구역만 보은군이지 사실 대전시와 성황당 고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경계마을이다.

법수2리 주민들은 보은지역 돌아가는 얘기는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대전 시내버스가 어떻고 병원이 어떻고 하며 대전지역 돌아가는데 관심이 더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1시간에 한 번씩 대전행 버스를 타면 대전역 앞까지 갈 수 있는데 보은을 가려면 대전에서 회남 거교리나 어부동, 또는 회인 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나가 다시 보은행 버스를 타야 하고 차비도 대전까지는 1천50원이면 대전 역까지 닿을 수 있지만 보은을 나가려면 2천원 이상 든다고 한다.

대전 역까지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보은은 시간이 잘 맞지 않으면 1시간 이상 걸려야 닿을 수도 있기 때문에 특별히 군 민원과 등에 볼일이 있지 않는 한 보은은 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지역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김은중 노인회장은 기자가 취재를 갔던 지난 14일 버스요금 1천50원을 내고 오전 10시차로 나가 대전 역전에서 내려서 노동이라는 이발관에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고 12시20분 차로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고 할 정도다.

또 한 주민은 집에 부리를 소가 있어 2만원이 지원되는 소 수정료를 타가라고 하는데 왔다갔다 차비들이고 또 시내버스 시간이 맞지 않으면 2시간이 걸리는 때도 있기 때문에 귀찮아서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특히 여자들은 아예 보은에 나갈 일이 없어서 보은군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주소만 보은군으로 돼 있지 거의 모든 생활을 대전에서 하다보니 대전시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무동은 현재 15세대 25명이 주민등록을 갖고 있으며 주민등록은 외지에 두고 거주하는 주민까지 합하면 31명이 살고 있다.

광산 김씨 집성촌으로 15가구 중 13가구가 광산 김씨다. 광산 김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을 주민들은 400년전 쯤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우무동과 이웃하고 있는 대전시 동구 주촌동 즉 오동리에도 광산 김씨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집안간인 이들은 비록 행정구역상으로는 서로 달라도 왕래를 자주 할 정도로 가깝다.

김남중(71)씨가 이장이고 김은중(78)씨가 노인회장이며, 금기일(68)씨가 부녀회장을 맡고 김선동(35)씨가 지도자로 돼 있다.

# 6·25때 피난처일 정도로 안전
수몰되기 전인 70년대까지만 해도 150여명이 거주했던 큰 마을이었던 우무동은 정감록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대청댐이 조성되기 전에는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 외부에서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한다.

과거에는 법수1리 날망 마을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길이 대청댐에 수장된 원 법수 마을 쪽으로 나 있어 버스를 한 번 타려면 10리 길은 걸어나가야 했다.

그래서 6·25 전쟁 때에는 외지에서 이 마을로 피난 온 사람이 바글바글했다고 한다. 인민군들이 이 마을에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빨치산조차 없었던 안전했던 마을이다.
그러다 80년 댐 조성으로 도로가 현재의 마을앞쪽으로 나가면서 법수2리가 외부에 알려졌다고 한다.

#실제 거주민이 65세 이상 노인
그동안 군내 여러 지역을 취재했지만 우무동 같은 마을은 없었던 것 같다. 주민등록상으로 3명만 빼고 모두 65세 이상 노인회원이며 어린이는 물론 중고등학생 조차 한 명도 없는 노인세대 마을이다.

노인세대도 65세 이상 69세까지 남자 2명, 여자 5명일뿐 나머지 주민은 모두 70세 이상이며 80세 넘는 사람이 5명이고 최고령자가 노인회 여자회원인 이귀예 할머니로 97세다. 마을이 얼마나 노령화 됐나를 금방 알 수 있는 통계수치다.

군내 가장 규모가 작은 마을이었던 회인면 갈티리에도 젊은 사람, 즉 4, 50대의 젊은이도 있었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 정말 비교되는 마을이다.

대전시와 아주 가깝고 무엇보다 30분내 대전 시내 도착이 가능하고 땅값이 싸 집 값 걱정 없이 우무동에 거주하면서 대전시내 직장에 다닐 만도 한 데 어째 한 명도 없을까.

주민들은 우무동에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 자식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부모들만 남아 있다고 답했다.
자식들 대신 마을에 남아 있는 부모들이 새벽 차로 대전에 나가 보따리 장사를 하며 푼돈 벌이를 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 아침 6시차 보따리 상으로 가득
아침 6시 회남면 거교리를 출발해 대전으로 나가는 버스에는 학생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대전에 농산물을 팔러 가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로 만원을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대부분 연로한 할머니들이어서 들고 가기가 무거우니까 ‘딸딸이’라 부르는 구루마를 가져간다. 그러니 시내버스 안에는 사람 반, 보따리가 담긴 구루마가 반인 셈이다.

보따리 안에는 고추며, 고사리, 취나물, 버섯, 쑥 배추 콩 등 노점에서 도시지역 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산물이 조금씩 들어있다.

97세 되신 최고령 이귀예 할머니도 봄이면 쑥 뜯고 가을이면 고사리 꺾고 집 앞에 있는 은행나무를 털어 노점 보따리를 만들어 새벽 대전행 버스를 타고 나가 팔 정도다.

이들은 모두 대전 역전에서 내려 업무가 개시되지 않은 9시전인 8시30분까지 좌판을 벌여놓고 노점을 한다. 8시30분이 넘으며 업무를 개시하기 위해 철도공사 직원들이 노점상을 철거하기 때문에 안에 다 팔아야 한다. 다 팔아도 1, 2만원, 많아야 3만원 벌이에 그친다.

그래도 그 1, 2만원을 벌겠다고 관절염을 앓는 할머니,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겨울철만 빼고 삼 철을 모두 대전역전에서 노점을 하며 산다. 그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 가구당 소득 200만원도 안 돼
이렇게 노점상을 하니 가구당 연 소득이 높을 것 같지만 연 소득이 200만원 정도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집집이 생활보호대상자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자기 앞으로 땅이 있고 자식들이 있으니 생활보호대상자 자격도 안 되는 형편이다.
좋은 전답은 모두 대청댐이 수장시키고 남은 너머지 산비탈이나 물에 들어가지 않은 일부 농경지를 일궈 먹는 것이 고작이다.

다른 지역과 같이 땅이 있어도 넓지가 않아서 논 하나가 200평정도 되는 것도 있지만 밭 2, 3평정도 하는 것도 수두룩하다. 옛날에는 경작하지도 않았던 땅을 지금 경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농사를 짓기가 여간 어렵겠는가. 들이 넓은 곳은 과거 300평 단위로 논 한 배미를 만들었는데 대형농기계가 움직이기엔 이 것도 좁다고 대구획 경지정리를 하는 마당에 경운기를 맘대로 운전하기도 좁아 아직도 이 마을은 소로 밭이랑을 타는 경우가 많다.

경운기도 있는 집이 있긴 하지만 소를 부려 쟁기질로 밭을 갈아 콩, 팥, 고추를 심어먹는다. 그래서 다른 마을은 소를 살찌워서 내다 팔아 돈을 벌지만 우무동은 소를 팔기 위해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밭을 갈아야 하기 때문에 먹이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소를 먹이고 싶어도 규제에 의해 사육을 하지 못하는 지리적인 불리함도 있고 농사지을 땅도 많지 않으니 소득이 높을 리는 만무하다.

# 댐 지원사업 효용성 높여야
수자원공사에서 지원되는 댐 지원사업비도 마을 주민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을 공동사업으로 농기계 등을 지원하고 있으나 농경지가 없는 우무동에는 달갑지 않은 선물인 것이다.

현재 댐 지원사업비로 마을에는 고추 세척기 2대, 콤바인 1대, 고추 건조기 2대가 있는데 이중 고추 세척기와 건조기는 1대씩만 사용하고 각각 1대씩은 놀리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주로 농사를 짓는 것이 고추이기 때문에 고추 세척기와 고추 건조기가 지원됐지만 경작면적이 적기 때문에 1대씩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공동시설로 지원되는 것이지만 마을에 효용가치가 없으면 예산만 낭비되는 것 아니냐며 경작할 땅이 없는 우리동네 같은 경우 차라리 농기계 등으로 지원하는 것 보다 가구당 얼마씩 생계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댐 조성으로 인한 불이익을 보조금 지원으로 마을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목적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농경지도 없고 있다고 해봐야 농기계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비탈진 곳의 생산성을 높여야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차라리 주민들의 바람대로 생계 보조금식으로 지원해 주거나 농작물 피해 보상 차원으로 현금 지원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우무동은 댐 조성 전까지만 해도 면내에서 가장 많은 감을 생산했을 정도로 감 고장이었으나 댐 조성으로 감 농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지만 열리기만 하지 안개로 인해 모두 빠져 전혀 수확을 할 수가 없다.

주민등록이 법수2리에 있으면서 실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인 이귀예(97, 여), 조종순(87, 여), 김삼중(82, 남), 김보희(83, 여), 조만순(84, 여), 김은중(78, 남), 김선명(73, 남), 박모순(75, 여), 정용금(76, 여), 김찬중(73, 남), 서행순(67), 김남중(70, 남), 김철중(70, 남), 금기일(67, 여), 김금언(66, 여), 김선회(67, 남), 김춘중(65, 남), 김수중(64, 남), 이임희(62, 여), 성충봉(77, 남), 임재만(65, 남)씨는 모두 노인회원이다. 새벽같이 대전으로 나가 노점을 펴서 살고 있는 이들이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새해에는 들려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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