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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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보은신문
  • 승인 200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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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현 희(성신여자대학교 의류학과 4학년)
#나의 고향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래서 나에게 고향이란 아버지의 고향으로 명절이나 방학 때 놀러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곳인데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었던 것 같다. 시골에 가는 길엔 항상 휴게소에 들러 볼일도 보고 맛있는 알 감자 구이와 호두과자를 사먹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바나나우유도 함께.
우리를 차에 실은 아버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가곤 하셨을 텐데 우리는 마냥 신나서 노래부르고 때로는 운전자들이 최고로 싫어하는 졸음 뿌리기를 하며 시골로 향해 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시골은 가축들의 냄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시골 분들은 언제나 정겨웠다. 차린 것은 없다면서 늘 푸짐한 시골밥상. 시골의 인심은 항상 푸짐한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의 고향에 가면 우리는 늘 빨리 집에 가자고 졸랐다. 그곳은 모기도 많고 벌레도 많아서 잠자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면 항상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그것도 지금은 10여 년이 흘렀다.
지금도 살아 계셨으면 종종 시골에 내려가 삼촌들과 술 한잔과 함께 그렇게 좋아하시던 고스톱을 치셨을 텐데..
고향은 나에게 슬픈 기억인 것 같다.

#내가 살던 동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고 내가 태어나고 몇 달 후에 처음으로 얻은 보금자리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라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직장생활을 하셔야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장에 가시면 빽빽하고 울어댔다고 하셨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문 틈새로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서는 할머니가 꽤 유명인이셨다고 한다. 아버지랑 어머니랑 직장에 가시니깐 삼남매를 봐주시느라 앞뒤로 애 안고 한 애는 손잡고 그렇게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도 세탁소 할아버지나 음식점 아주머니들은 그 애가 이렇게 컸냐면서 껄껄껄하고 웃으신다.
그리고 7년 정도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길 건너 합정동으로 이사를 갔다. 재미난 유년시절은 그곳에서 보낸 것 같다.
그 동네에 크라운베이커리 사무실이 있었다. 밤이 되면 그 사무실 앞에는 제품을 운반하는 봉고 차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동네에 있는 내 또래 아이들과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그 봉고 차 위에서 얼음 땡도 하고 방방 뛰어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달동네 친구들하고도 친해져서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정말 재밌게 보낸 것 같다.
그 동네는 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길 건너 가까이지만 마음먹고 가야만 갈 수 있고, 지금은 다들 떠나 그 동네에 가도 친구들도 없다. 얼마 전에 정말 우울할 때 그 동네를 찾았다.
작은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내가 자주 가던 슈퍼도 이름은 그대로지만 왠지 번듯하게 다시 지어 낯설고, 어렸을 때의 낭만과 추억은 없어지고 그저 낯선 동네가 되어버렸다. 왠지 우울하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인데 그 형태가 가물가물해지고 소꿉친구들도 다 이사가버려 텅 빈 동네가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그 곳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내 마음도 텅 비어져 쓸쓸함만 남았다.

#고향이란 존재
아버지나 나의 고향은 왜 이렇게 슬픔이 가득한 걸까?
다른 사람들의 고향은 푸근하고 따뜻한 존재로 힘들 때마다 생각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일텐데... 내가 살아온 흔적을 느끼게 해 줄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정말 슬프다.
사회는 점점 산업화 되어가고 작은 땅덩이에 사는 인구가 많아 아파트가 들어서고...
우리 고향은 충청북도에도 논과 밭이 사라지고 공장이나 아파트들이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왠지 상막한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 고향이라는 존재가 푸근하고 편안한 곳이라고 기억될 수 있을지..
힘들 때마다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겨줄 반가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고향이 아닐까?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해주는 곳인 고향을 파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 동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다시 힘이 샘솟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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