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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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다”
  • 보은신문
  • 승인 2007.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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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항거하다 자결한 내북면 봉황리 출신 이승칠 선생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지역 옛 이야기 두번째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몸이 원수의 옷을 걸쳤으니
백 대의 치욕이로다.
죽을 수는 있어도
오랑캐에게는 굴복 않겠다.]

이 시는 이승칠 선생이 일제에 모욕을 당하자 자결하면서 쓴 시다.
선생은 내북면 봉황리 출신으로 전주 이씨이며 경주영장을 지낸 이지현 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은 1850년에 태어났으며 1867년 1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어 주부로 송라찰방을 역임하고, 1886년 37세가 되던 해에 감찰로 승진했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선생의 생활은 비분강개한 나날이었다.

선생의 나이 61세 때 경술국치를 당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선생은 자결을 결심했다. 임금의 양위를 신하 된 도리로서 눈을 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선생은 자결을 기도했으나 가족들에 의해 실패하고 말았다. 1912년 2월 일본 천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보은에도 알려지고, 조선총독부는 한국인들에게 상복착용을 강요했다.

일본 경찰들은 시골을 돌아다니며 상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가 혈안이 되어 있는데 선생이 일본 천황이 세상을 떠났다고 상복을 입을 리가 없었다.

선생은 더러운 일본 옷을 입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일본 경찰은 선생이 상복을 입지 않자 곧 체포하여 주재소로 끌고가 말할 수 없는 모욕을 주었다.  나라를 잃고, 임금을 잃고, 또 주권마저 빼앗긴 슬픔도 큰데, 더구나 상복을 입지 않았다고 모욕을 주는 데는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은 일본 경찰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크게 시를 읊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선생은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오랑캐의 옷을 입을 수 없다고 항거한 것이다.

선생은 일본경찰이 풀어주자 집으로 돌아와 통곡하고, 가족들 모르게 봉황산 앞산으로 올라가 천 길이나 되는 절벽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때 선생의 나이 63세였다.

선생이 자결한 것은 나라를 잃은 치욕을 신하 된 도리로서 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군민들에 의해 선생의 애국정신은 기리어졌다.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선생의 생애를 군민들은 애도하며 비를 세웠다.

지금도 내북면 봉황리 봉황천이 흐르는 대골에 비 하나가 외롭게 서 있으니, 바로 선생의 애국 일념을 기린 비석이다.

이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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