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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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피리
  • 보은신문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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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회원들의 극기훈련을 마치고
6월 18일, 19일 양일간에 걸쳐서 관내 청소년 260명과 보은 BBS회원들이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행사는 관행적, 형식적 행사를 탈피하여 문화원을 출발하여 속리산 유스호스텔까지 걸어서 가는 다소 모험적인 계획을 짰다.

회원들한테 나도 간다고 큰소리를 쳐놓은 터인지라 행렬 중 12조를 맡아 학생들과 출발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학생들 각 읍면의 학생들이 모여 급조한 조 편성이고 보니 어쩌면 서먹한 것이 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터벅터벅 이평을 지나고 성주리 농협 앞을 가도 말들이 없다. 바람부리를 지날 때 속리중학교 다니는 학생이 선생님이라고 나를 부른다.

선생님??!! 기분이 좋다. “풀피리 불 줄 아세요?” 그러고 보니 말로만 많이 들었지 한번도 직접 불어 본적이 없었다.

“아니, 불 줄 모르는데” 학생은 어른에게 한 수 가르쳐 줄 기회가 생긴 것이 기뻤던지 길가에 풀 하나를 꺾어 집어 들었다.

합장하는 손처럼 두 손을 모으고 엄지와 엄지사이에 풀잎을 끼운 다음 입으로 갖다대고 불었다. 기대했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당황스런 학생은 예전에 잘 불었었는데 나지 않는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더 하기를 멈추고 말머리를 돌렸다.

“선생님! 풀은요, 깎을 때마다 더 억세져요” “피리를 부르려면 부드러운 풀잎이 소리가 더 이뻐요” 행렬은 어느새 통일탑 앞을 지나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힘들어하였지만 대개는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처음의 서먹을 지워버리고 서로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한 학생이 mp3로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으니 행진곡이 따로 필요 없이 흥에 겨워 발걸음이 더 가볍게 느껴졌다.

11조를 맡고 있는 BBS회원이 소리쳤다. 학생들이 대열이 2명∼3명 모여서가니 그가 보기에는 안전이 염려돼서 일렬로 줄을 서서 가라는 소리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나친 간섭으로 보였다.

“12조는 줄 안 맞추어도 좋다” “3줄로 가도 좋다” “친구 찾아 같이 가도 좋다” “단, 내가 서있는 바깥으로만 나오지 마라“ 그래 아이들아 마음 놓고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맘껏 상상하며 걸어라. 어른들의 잔소리에서 오늘은 해방되는 날이다.

장재 휴양림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을 했다. 말티재를 들어섰다. 셀 수없을 만큼 넘고 또 넘은 고개였지만 걸어서는 처음이다. 초입부터 차타고 다닐 때하고는 전혀 다른 싱그러움이 행렬을 흥분시켰다.

처음으로 말티를 만나는 것처럼 한마디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말티재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기쁨이 있었다.

적당한 그늘이 있고, 상쾌한 공기가 있고, 산행에서처럼 거친 숨을 요구하지 않는 평평한 길이 좋았다.

6굽이쯤 돌았을 때 지쳐 보이는 한 학생이 말했다. “저, 차타면 안돼요?” “차타고 싶으냐? 차는 많다. 타고 싶으면 타라! 허나 너가 지금 저차에 타면 너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버리는 것임을 알고 타라“ “너에 인생에서도 네가 힘들다고, 네가 몸이 약하다고 너를 특별히 봐주는 사회가 아닌 것을 일찍 알아라“ “이 사회가 네가 머리가 둔하다고 가산점수를 더 주는 세상이 아닌 것을 지금 알아라“ 학생이 알아듣건 말건 말을 했다, 학생은 차에 타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시원한 오이 하나씩 들고 나무그늘로 들어가 단잠 같은 휴식을 취한 후 목적지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내리막길이다. 오토매틱이 따로 없었다. 발 만 들기만 하면 앞으로 저절로 나아갔다.

벚나무 가로수 밑으로 파란 옷을 입고 가는 학생들이 참 대견해 보였다. 정이품송이 보였다. 목적한 곳에 다 와갔다.

출발할 때의 어색함이 없어지고 어깨동무도하고 끼리끼리 친해진 것을 보는 나는 흐믓했다. 풀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생전 처음해 보는 풀피리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요리조리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데 소리가 났다. 퉁소 같은 소리 뱃고동 같은 소리였다. 처음 불어보는 풀피리소리가 신기하기도하고 오십 가까운 나이에 속리산을 완주했다는 기쁨이 엉켜서인지 스스로 풍악을 울리듯 자꾸 불었다.

풍악소리가 들렸다. 보은고등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유스타운 입구에서 완주를 축하해주는 연주소리였다. 학생들의 상기되어있는 얼굴에서 BBS는 그날 성취감을 느꼈다. 안된다고 했던 일을 해낸 작은 일이지만 그 기쁨은 컸다.

우리는 확신했다. 풀잎 같은 여리디 여린 어린 학생들에게 보은을 가슴 속에 심어 주었다고, 묵묵히 4시간에 걸쳐 속리산까지 걸어낸 저 학생들은 보은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말티를 넘었다. 아이들은 풀잎이었고, BBS는 학생들이 스스로 피리소리를 만들 수 있는 자아를 갖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행사 후 학생들의 감동적인 소감 글에서 확인을 했다.

이번 행사와 연관 지어 보은의 바램을 이야기해도 무리는 없을는지 모르겠다. 가장 나이 어린 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 조그만 아이가 말티를 넘었다.

말로만 듣던 풀잎에서 피리소리가 났듯이 안 된다고 했던 일이 가능했던 일로 확인이 되었으니 보은을 덮고 있는 피해의식과 절망감을 떨쳐내고 각자가 작은 것부터 바꾸는 개혁의 피리소리를 내어보는 계기로 삼으면 안될는지..

정 구 필(영진건재 대표, BBS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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