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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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지는 길
  • 보은신문
  • 승인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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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오장환 백일장 초등부·중고등부 산문부문 장원
김 미 희 (보은자영고 3-4)

오늘도 싱크대엔 설겆이가 가득하다. 밥통엔 딱딱해진 밥이 나뒹글고 신을 양말이 없을 정도로 우리집은 배고픈 돼지들이 한바탕 날뛰고 나간 우리 마냥 몇일째 지속되고 있다.
그에 도전하는 나도 만만치 않다. 책상엔 어지러진 책과 공책들, 아무것도 안먹는다고 단식투쟁한다고 한지 이틀째고, 학교도 아무 이유없이 땡땡이 치고 나온 오후다. 엄마랑 나랑 이렇게 지낸지 벌써 이틀이 지나고 반이 지났다. 나에 대한 미움을 실망을 그렇게 표현하시는 엄마께 이렇게 밖에 못대해 드린 나였다.

이틀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말쑥한 정장을 입으시고 까만 가방에 성서와 필기도구를 챙기시던 엄마가 나에게 재촉하시지만 나는 꼼짝않고 있었다. 억지로 손을 당기시는 엄마에게 소리지르는 것 밖에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12시까지 가야하는 집회에 나하고 현관문에서 실랑이를 하느라 엄마는 20분 늦게 집을 나가셨다. 일요일 마다 지긋지긋한 엄마와의 이 싸움은 손목에도 마음에도 상처를 남긴다.

엄마와 나는 4살이후에 9년만에 다시 만난 사이다. 4살때 날 버리고 새 아빠랑 결혼하시고 6학년때 다시 데려가셨다가 나에 대한 새 아빠의 마음이 같이 살 수 없을 만큼 나쁘자 엄마는 나를 할머니께 보내면서 두번 버리셨다.

그런 엄마가 중학교 2학년때 둘이서 다시 시작해보자면서 새 아빠랑 이혼하시고 돌아오심으로 해서 우리는 행복한 시간만 생각함으로써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건 엄마와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9년만에 만난 엄마와의 생활 아니 동거는 우리 둘을 뙤약볕에서 100바퀴 뛰어서 쓰러지는 것 만큼 힘들게 했다. 엄마 생각과 내 생각은 천지차이였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심한 문제는 엄마 종교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사이비 집단에 너무 흠뻑 빠져있는 엄마는 나를 그곳에 데려가려 했다. 일주일에 두시간씩하는 집회가 3일씩이나 있고 성서공부라는 것도 해야하고 이상한 잡지를 들고 나가 인상쓰면서 싫다는 사람한테 웃으면서 봉사라는 이름으로 잡지도 나눠줘야 했다.

황금같은 일요일에 일찍일어나는 것도 싫었고 집회때 해야할 부분을 예습해야 하는 것도 싫었고 치마를 입고 어른스러운 척 고상하게 앉아있는것도 싫었고 사이비라고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는것도 싫었다. 엄마는 한 참을 멍하니 식탁만 바라보셨고 속 시원히 말해버린 나 또한 엄마의 벌겋게 상기된 눈꺼풀에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힘없이 일어서서 겉옷을 주섬주섬 챙기시고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 엄마 뒤로 나도 따라 겉옷을 챙길 뿐 우린 말이 없었다.

엄마는 무엇부터 말을 시작해야할지 모르시는 것 같았다. 한참 뒤 엄마의 이야기들은 나를 가슴에 눈물 흘리게 했다. 나를 버리시고 나가신 엄마는 기댈데가 없어서 종교의 힘을 빌어 겨우겨우 살아가셨다.

죽을뻔한 적이 있었는데 종교때문에 다시 살 결심을 하게 되신 엄마는 이 종교에 애착과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되셨다고 한다. 이 종교의 핵심이자 진리이자 믿음은 낙원이다. 이 종교에 몸바쳐 헌신하고 하느님을 믿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착한사람들 즉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 살게 되는 날이 올거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이방인들은 지옥에 떨여져 불지옥에 빠져서 평생 살거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듣는 나는 무슨 소설 읽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들었지만 엄마는 뭐에 홀린 마냥 실제 일어날 일처럼 눈을 반짝이며 설명해 주셨다.

그 무서운 곳에 내가 가는게 싫으셨다고 한다. 그 불구덩이에 허우적대면서 자신을 원망할까봐, 생전에 못해준 게 너무 많은데 그곳에서 조차 엄마는 나를 위해 해주실게 없을까봐 엄마는 그 현관문앞에서 불구덩이에서 손을 당기시는 마음으로 잡아 끌었다고 한다. 조용히 눈물로 엄마께 대답했다.

엄마의 속에 들어가 볼 생각조차 못했던 날 원망하면서… 점점 길이 좁아진다. 엄마와 나의 사이도 좁아진다. 어깨가 땋아서 부끄러운 이 손을, 민망한 이손을 감히 엄마의 어깨위에 올려본다.

걸어가면서 아무말 없는 우리 모녀는 먼 훗날에 이 길을 떠올리며 웃는날이 오겠지. 싱그러운 나무가 우거지고 점점 좁아지는 이 길처럼 엄마와 나 사이에도 웃음꽃만 피어나고 점점 사이가 좁아져서 하나가 되는 날이 오길 두손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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