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산외면 신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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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산외면 신정리
  • 임향묵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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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자체가 휴양림
험준한 바위로 둘러싸인 마을이어서 과거 바윗골 또는 암동이라 불려졌었던 신정리는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푸르름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신정리는 마을 입구로 들어서 바로 보이는 신정 유스타운을 지나면서부터 포장길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아랫말과 웃말로 구분되어져 있는 이곳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위 아래의 구분이라기보단 마을 입구에서 먼저 있고 없고의 차이에 불과하다.

이곳 마을 중앙에 들어와 보면 꼭 숲 속에 들어온 듯 사방이 푸른 나무와 높은 산이 시야 한가득 들어찬다.

신정리는 전체적으로 경기면적이 부족한편이며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 그렇듯 논면적이 2만 5000평인데 비해 밭면적이 4만여평으로 밭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쌀은 수매의 성격이 아닌 자급자족의 의미를 띄며 수입을 위한 농사는 고추 등 밭작물에 의존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마을을 찾아간 우리를 맞아준 마을 서계원(64) 이장도 부인과 함께 한창 고추를 심고 계셨다.

바쁜 농사철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 불과한 우리들이지만 “별로 볼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작은 마을인데... ”라며 말끝을 흐리며 웃어주시는 이장의 얼굴은 선한 이웃집 아저씨를 보는 듯 편안한 기분이었다.

고추를 심고 있던 땅은 산밑을 개관해 만든 밭인 만큼 평평하지 못하고 비스듬히 경사가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이 땅은 유일하다 할 만한 농가의 소득원인 것이다.

신정리는 산촌개발 마을로 선정돼 지난 2001년 표고버섯 재배시설을 82평 20동에 설치하고 흑염소와 사슴 등을 100여마리 사육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 소득사업으로 추진하였지만, 전체 주민 25가구 60여명 중 50세 미만이 단 4명뿐이고 김기용 새마을지도자회장이 62세로 주민 대부분이 60∼70세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농사를 지을 능력이 되지 않아 현재는 표고버섯 재배시설과 흑염소 사육시설을 외지인에게 임대하는 형편이다.

임대 또한 지난해 폭설피해로 인해 버섯소득이 많지 않은 까닭에 많은 임대료를 받지 못해 소득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흑염소와 사슴 사육시설이 마을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분비물 정화장치가 없어 그대로 마을로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식수를 사용함에 있어 찝찝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며 정화시설을 설치해주길 바라고 있다.

신정리 마을은 군의 허락하에 13가구가 송이버섯을 채취하여 농·특산물 직판점을 겸하고 있는 마을회관에서 판매를 하고 있지만 외지사람들이 무단으로 채취하는 등 양이 줄어들어 소득도 줄어드는 형편이다.

한때 소득이 많을 때 가구당 3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렸지만 이제는 100만원 안팎의 소득만을 가져다주고 있다.

한편 신정리 마을은 지난 3월 31일 군 산림청과 1사1촌 자매결연을 맺어 고령화로 인해 일손이 부족한 마을 일손에 작게나마 얻을 수 있는 도움과 마을 행정에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으로 변하여 마을을 지켜낸 장군석과 병풍바위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정리는 과거 바윗골이라 불릴 정도로 바위가 많은 마을이었다.
그때문인지 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떠돌고 있기도 하다.
마을 앞쪽 산을 보면 현재는 수많은 나무로 인하여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없지만 산 전체에 걸쳐 마치 병풍을 쳐놓은 것처럼 크게 펼쳐진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병풍석’이라 부르고 있으며, 병풍석 앞 200m 지점에 ‘장군석’이라는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병풍바위와 장군석에 관한 전설은 옛날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과거 전쟁이 일어나 외적이 이곳 마을까지 쳐들어 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모두 외적을 피해 두시산에 있는 병풍바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골방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외적은 이미 그곳까지 쳐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어찌할 방법도 없이 그냥 있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병풍바위 앞에 우뚝 솟아 있던 큰 바위하나가 갑옷과 투구를 쓴 장군의 모습으로 변하여 큰칼을 들고 달려오는 외적을 상대로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수많은 외적을 순식간에 해치운 장군은 외적이 모두 물러가자 처음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한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장군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폈다는 옛날 이야기처럼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본래 전설이라는 것이 상상과 이상이 공존하는 만큼 이 전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장군석이라 불릴 만큼 그 모양새가 위용 있게 우뚝 솟아 있다는 말일 것이다.

태권도 공원 유치 실패 지역 주민이 겪는 후유증 커

한때 신정리는 태권도 공원 부지가 조성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심리로 인해 들떠 지낸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태권도 공원 부지 조성이 전북 무주군으로 선정되면서 주민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게 되었다.
다른 도 대표와 경쟁하는 것은 물론 같은 도내에서도 진천군과 경쟁해야만 했던 보은군으로써는 도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 패인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태권도공원으로 선정된 무주군이 문대성과 같은 유명선수를 섭외해 광고를 하고, 경주시가 국토순례에 나서고, 진천군이 서명운동으로 활발한 유치활동을 하는 동안 소홀한 유치활동을 펼친 군의 책임도 있을 수 있다.
많은 유치비를 투자한 것도 아닌 이상 군 차원에서의 실망감은 다소 적더라도 태권도 공원이 조성된다면 그로 인해 가져올 여러 가지 기대치로 인해 들떠 있던 마을 주민들의 실망감은 누구보다 컸다고 한다.
태권도 공원 유치다 관광사업 조성이다 말들이 많아지면서 평당 5천원하던 땅값도 상승하여 현재는 평당 10만원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땅값이 올라 좋은 일이 아니냐 생각하겠지만, 마을 전체 농지의 1/5은 이미 외지인들의 소유가 되었고 이렇다할 구체적인 관광사업 등의 유치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땅값만 올랐을 뿐 실제로 팔리지는 않아 민심만 흉흉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태권도 공원 실무 추진위원들의 현지 실사를 위해 농지와 등산로 입구쪽으로 1㎞ 가량 깔아놓은 석분으로 인해 주민들은 제2의 피해를 보고 있다.
비가 오면 빗물에 쓸려 석분이 농경지로 유입돼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하루 빨리 석분을 제거해주던지 농지로 들어가지 않도록 농노포장 등 조치를 취해주길 바라고 있다.
한편 신정리는 묘봉과 상학봉 등의 산이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마을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광명소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산들에 비해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꾸준히 주말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200여명의 등산객이 방문하고 있다.
그렇지만 관광명소로 지정된 곳이 아니기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는 그대로 주민들의 몫으로 방치되며, 등산로도 허술하여 사고가 가끔이지만 일어나고 있는데 산속에서는 휴대폰조차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행이 있다면 직접 마을까지 내려와야만 하며, 혼자 산행을 하다 다쳤을 경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휴대폰이 연결될 수 있도록 신경 써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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