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암 수암화상탑 학조등곡 화상탑
4월문화기행으로 찾은 곳은 복첨암 수암 화상탑과 학조등 화상탑이었다.그동안 충북도지정 유형문화재였던 두개의 화상탑이 지난해 10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승격 지정됐다.
찬기운이 가시고 봄기운을 맞아 봄의 시작으로 3월로 잡지만 꽃샘 추위 그래도 찬기운이 남아있어 꽃피는 시기인 4월을 봄의 시작으로 봐도 무리는 아닐 듯 하다.
그래서 봄기운을 온몸으로 받고 또 아름다운 꽃향연을 함께 즐기기 위해 문화기행으로 잡은 속리산 복천암 수암과 학조등 화상탑을 찾아가는 길은 문장대 및 천왕봉 등을 등반해 봤지만 속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솔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복을 준 샘물로 갈증을 풀고
복천암까지 가는 길을 굳이 설명하자면 우선 내속리면 사내리 집단시설지구에서 상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저수지를 지나야 한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설로 가지 하나를 잃은 황금소나무가 아직도 황금빛을 띠는지 확인하고 아직 잎새가 나오기 전인데도 하늘높은 줄 모르고 키를 키운 나무가 만든 나뭇가지 그늘 등산로를 따라 세심정까지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봄 관광이 시작된 듯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았다.
땅기운이 충만하고 공기마저 신선해 감기 기운으로 막힌 코가 뻥 뚫렸고 등뒤에서 다소곳하게 솟는 것이 느껴지는 땀까지 등산객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한다고 했는가.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인자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건네고 좋은 산행이 되라고 기원한다. 모두가 인자요산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살을 빼기 위해 아니면 건강을 다지기 위해 400미터 공설운동장 10바퀴를 걷거나 뛰는 것과 비교하면 복천암까지의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는데 오랜만의 산행탓인지 다리가 조금 아픔을 느낄 정도다.
세심정을 지나 복천암 입구의 ‘이뭣고다리’에서 잠시 쉬고 경사가 가파른 복천암 길을 걸었다.
복천암에 닿아 얼마전 큰 스님이 기거하는 방이 화재로 전소된 곳을 보고 낙산사가 불에 탔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행인가에 마음을 쓸어내리며 복천(福泉) 한 모금을 마시며 단내가 나는 입을 다셨다.
무색무취의 찬 물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 넘어갈 때 즈음 갈증을 가셔준 가장 맛있는 물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경내 자리한 수 백 년된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는 주목은 수 십 년 전 수학여행을 왔을 때도 그 모습을 보였다던 주목이 지금도 그 모습을 보이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란 주목의 생명력을 이해할 만했다.
바람이라면 천연기념물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세나 모양 등으로 보면 천연기념물 지정 자격은 충분히 될 듯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달래 꽃 수줍게 핀 가장 아름다운 오솔길을 따라
목적지인 복천암까지는 왔다. 그런데 수암과 학조 화상탑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이정표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화상탑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찾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경내 동쪽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갔다. 입구의 좁은 오솔길 양옆에 조릿대가 나 있었고 얼마 안가서는 노란색의 제비꽃이 반겨주고 더 진행하니까 속리산에도 진달래가 있구나 ‘심봤다’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진달래 오솔길이 나왔다.
수줍은 듯 분홍빛깔의 상기된 표정으로 속리산의 봄빛으로 다가온 진달래 오솔길은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화상탑을 찾는 사람들이 오르기 쉽게 바위를 쪼아 바위 계단을 만들었는데. 바위돌이 잘 쪼개지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정으로 쪼은 이들의 땀을 읽을 수 있었다.
거기다 오솔길 양옆으로 다른 나무 하나 없이 적송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 자랑을 하고 소나무 가지 하나가 90도로 꺾여 다시 위쪽으로 향하고 옆으로 누웠다가 위로 키가 큰 소나무 등 기이한 소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장대까지, 천왕봉까지 오르는 눈에 익은 길이 아닌 화상탑 가는 길에 만난 진달래 길이나 적송의 모습은 속리산에서 처음 만나는 모습이다. 아마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같은 감흥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가을에는 속리산의 특산품인 향 짙은 송이버섯도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세속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풍경을 앞에 두고 생각나는 것이 송이버섯이라는 어쩔 수 없는 속물 근성에 미치고 말았다.
그런 장면장면들을 만나면서 닿은 수암화상탑과 학조화상탑이 자리한 곳은 그렇게 아늑한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닥은 잘 다져진 흙바닥이었고 화상탑 주변은 넓게 적송이 울타리를 친 듯 둘러쳐져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지만 누군가 매일 관리를 하는 것처럼 매우 정갈하게 정돈돼 있었다.
복천암 수암·학조 화상탑 아직도 도지정 문화재
충북도지정 문화재였던 복천암 수암 화상탑(보물 제 1416호)과 복천암 학조 등곡 화상탑(보물 제 1418호)이 지난해 10월 국가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수암화상탑과 학조등곡화상탑은 아직도 충북도지정 제 12호와 13호 유형문화재로 표기, 아직 문화재 관리에 대한 손길이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또 안내도에서 수암화상탑(秀庵和尙塔)은 조선시대 전기의 고승으로 시호가 혜각존자(慧覺尊者)인 신미(信眉)의 부도로서 1480년 성종 11년에 조성되었고 형식은 팔각원당형부도(八角圓堂形浮屠)로서 기단 위에 탑신(塔身)을 놓고 그 위에 옥개석을 덮은 뒤 상륜(相輪)을 장식했다고 적고 있다.
학조등곡화상탑(學祖燈谷和尙塔)은 연산군때 고승인 학조대사 등곡의 부도로서 1514년 중종 9년에 조성됐는데 등곡은 일명 황악산인(黃岳山人)이라고 하며 스승인 신미대사의 부도 뒤편에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화상탑 모양과 형태 등만 적고 있고 신미가 누구인지, 학조가 누구인지 안내하고 있지않아 일반인들에게는 충실한 설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신미는 수미(守眉)와 함께 선도(禪道)를 널리 선양했다.
신미대사는 보은읍 지산리에 부조묘를 두고 있는 김수온의 형이기도 하다. 김수온도 고전에 밝고 문장에 능해 세조의 명으로 원각사비명을 지었고 금강경을 한글로 번역했으며 형 신미의 영향으로 불교에 깊이 감화돼 화엄사에서 출가를 꿈꾸기도 했다고 한다.
1464년(세조 10) 속리산(俗離山) 복천암(福泉庵)에서 왕을 모시고 신미(信眉) ·학열(學悅) 등과 함께 대법회를 열었다.
세조의 신임이 두터워 세조가 왕이 되기 전부터 모든 일을 그와 상의했다고 한다. 세조2년인 1456년에는 도갑사를 중수했다고 한다.
함허당의 금강경설의를 교정해 오가해(五家解)에 넣어 1책으로 편집했고 선문영가집을 교정했다.
또한 증도가언기주(證道歌彦琪註)와 조정록(祖庭錄)을 모아 한 책으로 간행했다.
등곡(燈谷)은 세조 때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경을 한글로 번역·간행하고 1467년 왕명으로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중창에 착수하고, 1487년(성종 18)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뜻을 받들어 해인사 ‘대장경’ 판당(板堂)을 중창했으며, 1500년(연산군 6) 신비(愼妃)의 명으로 해인사의 ‘대장경’ 3부를 간인(刊印), 그 발문(跋文)을 지었다.
‘남명집(南明集)’을 언해하고 1520년(중종 15)에는 왕명으로 다시 해인사 ‘대장경’ 1부를 간인했다.
상사화 군락지 발견
화상탑을 보고 비로산장 쪽으로 하산을 했다.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진귀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상사화 군락지와 돌로 쌓은 축대, 또 애상동물에게 겨울철 먹이를 준 것 같은 시설 아니면 나무위에서 사는 새 등의 똥을 받기 위한 시설일 것 같은 그물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이는 속리산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상사화는 계곡 한 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돌 축대는 길이가 긴 것이 아니고 매우 큰 돌을 사용해 정교하게 쌓았다.
상사화가 있고 돌 축대가 있는 것을 보면 사찰정리를 하기 전 암자가 많았던 때 암자 터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좁은 오솔길을 따라 비로산장 쪽으로 내려왔는데 이곳에도 역시 화상탑을 알리는 이정표는 없었다.
복천암 수암·학조등곡화상탑은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문화재청이나 절 등에서만 위치를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욱이 속리산 입장료에 공원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가 포함돼 있는 것을 볼 때 화상탑도 분명히 문화재이므로 안내간판을 설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내간판을 설치했는데도 관람객들이 이를 관람하지 않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므로 입장객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