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 박물관의 가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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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박물관의 가치는
  • 송진선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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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잘 알다시피 내속리면 사내리에 위치한 에밀레 박물관은 조자용박사와 그의 부인이 사망한 후 무남독녀인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딸의 소유로 돼 있다.

에밀레 박물관 삼신사 캠프를 방치한다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개인 소유물이기 때문에 행정력이 미치는데는 사실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군비를 들여 훼손된 곳을 고친다는 것은 개인 집을 고쳐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실은 군에서도 선 뜻 나서지 못하고 그렇게 몇 년간 두고보고 있는 것일 것이다.

소유권만 해결되면 아마도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제 1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밀레 박물관의 영향력으로 보면 그냥 개인 소유물이라고 방치해서는 안되는 귀중한 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는 재산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에밀레 박물관은 까치 호랑이, 도깨비, 잉어, 용 그림 등 한국 민화의 집합소였고 우리 민화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창구였다.

또한 이같은 민화에 대한 연구가 기반이 돼 마을전통문화와 신앙연구로 이어졌으며 마을의 고유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옛마을 운동을 벌이고 전통신앙을 연구하는 삼신학회를 결성한 곳이다.

그 중심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구조공학을 전공했고 건축구조물에 관한 세계특허를 여러개 갖고 있으며, 구조공학에 정통한 세계적인 건축가로 서울 종로 YMCA 건물과 한옥의 정동 주한미대사관 관저를 지은 한국의 가우디라고 일컬었던 조자용박사가 있다.

그렇게 명성이 자자했던 건축가가 건축을 포기하고 한국 민화와 민속신앙에 관심을 가져 1982년 내속리면 사내리에 에밀레 박물관과 삼신사캠프를 지어 보은에 거주한 것 자체가 뉴스였다.

보은사람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를 만나기 위해 또한 그와 민속문화에 대해 논하기 위한 교수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등 에밀레 박물관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보은에 오기 전 1975∼1980년에는 미국 순회 민화전시회를 열어 한국민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고, 에밀레 박물관을 세운 후에는 유재봉 조각가의 작품인 대형 도깨비전신 목조상과 도깨비 오방신, 그리고 송주태 화백이 그린 도깨비 그림 등 도깨비와 관련된 자료를 서울 관훈동의 가나 아트 스페이스에서 전시하며 보은에서 연구한 민화와 도깨비를 상경시켰다.

삼성플라자 갤러리에서도 ‘왕도깨비전’을 개최하고 대전 엑스포공원에서도 도깨비와 용을 테마로 한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도깨비의 모습을 조명해 도깨비의 본거지가 보은이라는 이름을 얻게 했다.

또한 88년 시작해 90년 완공한 삼신사 민속캠프장은 우리 문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옛날 고택(古宅)을 헐어 2백년이상 된 목재를 구해 옛날 귀틀집 형태와 기와집 형태로 꾸몄는데 세계인들이 참여하는 개천절 국중대회를 개최해 한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소개하고 서양문물을 선호하고 우리문화에 배타적인 청소년들도 숙박을 하며 우리문화를 익히게 하는 산실로 만들었다.

외지 기술인들의 손을 전혀 빌리지 않고, 내속 상판리 주민들의 손으로 지은 삼신사 캠프와 에밀레 박물관은 10여년, 20여년 남짓의 일천한 역사지만 어느 것에 견줘 뒤쳐지지 않는 무게가 있는 문화관광 자원인 것이다.

개인소유라고 방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유족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그것이 품고 있는 깊은 문화향기, 문화의 보고를 활용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산실로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죽어있던 도깨비나라 에밀레 박물관 삼신사 캠프가 제 구실을 다해 역시 죽어있는 속리산을 부활시키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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