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암 구수복 선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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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구수복 선생(8)
  • 보은신문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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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사(招)가 “일기에 쓰인 것과 서로 다른가?” 함에, 남곤이 아뢰기를, “만약「일기」를 고찰하게 되면 아마도 옥사가 만연되어 조정이 불안정해 질 것입니다. 윤구는 이름 있는 선비인데 어찌 참으로 이 같은 일을 했겠습니까?” 하고, 김영이 아뢰기를, “이름 있는 조사가 이러한 일을 했기 때문에 추문하는 것이지, 만약 어리석은 백성이 그랬다면 반드시 이같이 할 것도 없습니다. 소소한 일도 이같이 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큰일이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의 말과 같다면 윤구는 반드시 흉악하고 사특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니, 중종이 이르기를 “재상을 뽑는 일은 큰일인데 만약 참으로 이같이 했다면 그 죄는 용서할 수가 없다. 만약 말꼬투리가 잘못 되었을 뿐이라면 꼭 죄줄 것은 없으나 추문함이 가하다.” 하였다. 중종이 전교하기를 “재상을 뽑을 때 수의한 말을 윤구가 승정원일기에 써 놓았을 것이니 상고하여 아뢰어라. 또 윤구의 소에 말하기를 ‘만약 그 당시 승지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니 당시의 승지를 불러서 상세히 물어 아뢰어라.” 함에, 이성동. 한효원이 소명을 받고 와서 아뢰기를 “그때에 윤구가 신용개의 말로 회계하기를, 재상을 뽑는 일을 거듭 거듭 하문하셨으니 신중한 뜻이 지극하십니다. 전일 하문하셨을 때에 정광필과 의논하여 아뢰었으니 그때에 어찌 헤아려 보지 않고 아뢰었겠습니까? 김전. 이계맹. 남곤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며 또 신하를 알아보는 데는 임금만한 이가 없으니 오직 위에서 짐작하시기에 달렸습니다. 하문하신 안당의 일은 그가 어진 줄을 안다면 탁용하는 것이 가합니다. 다만 조종조에서 재상을 둘 때에는 장차 중용하려는 것이었으므로 모름지기 ‘점차로 등용하여 반드시 두루 시험한 뒤에 중용하였지 초천한 일은 없다.’ 하였습니다.” 했는데 우승지 윤은필이 이성동등의 말로 친계하니, 중종이 이르기를, “윤구도 이런 뜻으로 회계했는가? 지금 두 사람의 말을 들어 보건대 대략 서로 같으니 추문하지 말라. 다만 일기에 써놓지 않고 빈종이 2장만 남겨 두었는데, 대개 상고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승정원일기를 상고하는데도 그 당시의 주서 두 사람이 모두 소홀히 하여 기록하지 않았으니 그 죄가 없지는 않다. 이것으로 추고함이 가하다.” 하였다. 이때에 와서 윤구의 옥사로 인해 중종 13년 5월 7일자 승정원일기를 상고한즉 빈 종이만 남아 있고 그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구수복은 윤구와 같이 주서로 있었다는 것 때문에 중종 15년 3월 20일경에 하옥되었다. 윤구가 실제로 그 의논을 수합(收合)하여 회계할 때에 김전. 남곤. 이계맹 3인을 중하게 여긴다는 말을 빼버렸었는데, 구수복이 회계의 말을 쓰려고 하여 굳이 청했으나, 윤구가 계장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중종 13년 8월 6일 구수복이 홍문관수찬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일기에 빈 종이만 남아 있게 된 것이요, 구수복이 직임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4-3) 구수담의 상소로 방면
중종 15년(1520) 3월 20일경. 윤구의 옥사에 연계되어 파직 하옥된 구수복은 4월 2일 아우인 생원 구수담의 상소로 방면되었는데, 그 때의 상소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신의 형 구수복은 전에 주서를 맡았을 때에 복상의 의득을 쓰지 않고 빈 종이를 끼운 일 때문에 정적이 주무하다 하여, 지금 옥중에 있으면서 형신까지 받습니다. 당초에 윤구가 수의하여 회계할 때 좌의정 신용개가 말한 것과는 어그러지고 빠진 것이 자못 많았는데, 그때 이미 공론이 있었으므로 오늘의 일에 대해서 다들 압니다. 어찌 추문할 때를 당하여 臣의 형에게 책임을 미루어 시비의 자취를 엄폐하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복상 때에 형은 실로 그 의논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윤구가 회계한 뒤에는 그 일을 분명히 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곧 기초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않았으므로, 일기를 장속(裝束)할 때에 빈장을 끼워 넣어 저 사람이 말을 전하기를 기다려서 책에 쓰려 하였으나, 윤구가 오히려 엄폐하고 말하지 않았으니 무엇에 의거하여 쓸 수 있겠습니까? 그날 의득하여 회계할 때에 신의 형은 빈청에서 종계(宗系)에 관한 의논을 하는 자리에 참여하여 듣고 있었으니, 복상의 의논에 참여하지 않았음은 분명하게 증험이 있습니다. 더구나 원(院)의 관원이 함께 기사의 붓을 잡으므로 각각 들은 것을 곧 책에 써야 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기다리겠습니까? 그 일을 스스로 쓰지 않은 데에는 반드시 그 뜻이 있습니다. 대개 주서는 사관의 유가 아니므로, 이미 한 주서가 있어서 그 일을 써서 아뢰면 다른 주서가 또 참여하여 들을 리가 없으며, 만약에 참여하여 들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한때의 승지와 사관이 함께 보아서 알 것입니다. 한사람의 이목일지라도 엄폐할 수 없는데, 더구나 뭇 사람이 본 것이겠습니까? 하였다.<구수복의 바로 밑에 아우인 구수담은 문과에 급제하여 명종조에서 여러 조의 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한 을사명현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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