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닭의 해 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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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닭의 해 띠 이야기
  • 곽주희
  • 승인 200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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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복을 부르는 영물로 일컬어
머리에 있는 볏은 문(文)을 상징하고, 발은 내치기를 잘 한다 하여 무(武)로 여겼으며, 적과 맹렬히 싸우므로 용(勇)이 있다고 하였고, 먹이가 있으면 자식과 무리를 불러 먹인다 하여 인(隣, 仁)이 있다 하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이 있다 하였다.

그래서 닭은 예로부터 길조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알과 고기를 주니 그보다 더한 익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조상들의 생각이었다.

또 혼례를 올릴 때 닭을 예상(禮床)에 올리는 것은 오랜 풍습이었다.

이때 닭은 청홍(靑紅) 보자기에 싸서 올려놓거나 동자(童子)로 하여금 안고 있도록 했고, 지금도 예식을 마치고 시댁 부모와 상면할 때 폐백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처자를 잘 보살피는 수탉의 도리와 알을 잘 놓고 병아리를 잘 키우는 암탉의 도리를 부부가 되는 이들에게 인지시켜 주기 위함일 것이다.

닭은 닭목의 꿩과에 속하는 조류이다.

닭은 인도나 동남아지방에서 야생하는 들닭을 잡아다 사육개량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6,7세기에 들어왔다고 문헌은 전하고 있다.

중국의 삼국지‘동이전’이나 후한서에는 우리나라에서 꼬리 긴 장미계(長尾鷄)를 키운다고 기록하였으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꼬리긴 닭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닭을 기르기 시작한 연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으나, 중국의 해동역사라는 책에 ‘조선에서는 닭을 부를 때 구구라고 한다’라는 기록이라든지, 경주 천마총에서 계란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길러온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의 기록에는 닭이 새벽에 우는 습관을 이용해서 시보용(時報用)으로 궁중에서 여러 마리 키웠다고 되어 있다.

우리의 토종닭은 잡종이나 수입종에 비해 취소성이 강하며, 성질이 활달하고 부화와 육란을 잘 한다고 하였다.

몸은 비교적 작지만 한꺼번에 20알 정도를 품어 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모성애가 강하다.

산란수는 이틀에 한 알 꼴이다. 몸이 가벼워 날기를 잘 하고 수컷은 꼬리가 길어서 땅에 닿는 것도 있다.

귀뿔은 홍색 또는 유백색이며, 안면은 홍색이 대부분이다. 다리의 길이는 중간이고, 다리에 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깃의 색깔은 주로 갈색·등황색·검은색 등이며, 흰색 토종은 없다. 겉날개 깃은 녹색을 띤 흑색이며, 등과 어깨는 암적갈색 또는 흑색이다. 턱과 얼굴 주위에 흑색 깃털이 나 있다.

예로부터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닭의 날이라고 하였다. 닭은 모든 것의 처음을 뜻하는 동물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도 닭우는 소리로 태초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고 우리나라엔 닭과 관련된 창조신화나 위인들의 난생설화가 유난히 많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고, 그의 왕비는 계룡의 갈비뼈에서 났으며, 김알지가 태어날 때는 숲에서 닭이 울었다 하여 그 숲을 계림이라고 하였다.

닭은 사람과 늘 함께 하는 가축이므로 그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닭 싸우듯 한다’는 말은 크게 으르지도 못하면서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 다툰다는 뜻이다. 닭대가리라는 말은 사려가 깊지 못하고 지혜가 얕은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닭고집이라는 말은 고집부리지 않아도 될 하찮은 일에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닭은 단백질 공급원으로는 소·돼지 다음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백년손님인 사위에게 씨암탉을 대접하는 풍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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