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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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는 누구인가?
  • 보은신문
  • 승인 2004.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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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선 신라고승
세속의 성은 설(薛)씨이고 법명 원효이며 617년 경상도 압량(押梁) 고을 불지촌(지금의 경산 부근)에서 태어났으며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628년 12세때 화랑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나 서라벌에 갔고 630년 14세 때 친구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귀중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을 보고 화랑이 되려는 꿈을 버리고 출가하여 황룡사에 들어 법명을 원효라 했다.

그러다 조용한 곳에서 불경을 읽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 집을 헐어 초개사를 지었고 의상을 찾아와 불경과 불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법을 깊이 있게 배우기 위하여 당나라로 유학을 떠날 것을 의논했다.

650년 (34세)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으나 고구려 순찰대원에게 잡혀 신라로 되돌아 와 초개사에서 불경을 읽으며 지내다 661년(45세) 의상과 함께 다시 당나라로 가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 중 당항성(唐項城, 지금의 南陽)에 이르러 한 무덤 속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날이 새어서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음을 크게 깨달아 유학을 포기하고 의상과 헤어진 뒤 서라벌로 되돌아왔다.

그 후 분황사의 무애당에 기거하면서 ‘화엄경소’라는 책을 쓰는 등 불경연구에 전념하는 한편 법회에 나가 경전을 알기 쉽게 풀어서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있는 태종무열왕의 둘째 딸이고 김춘추의 둘재 누이인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지낸 후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小性居士)·복성거사(卜性居士)라 자칭하고 무애가(無碍歌 : 모든 것에 걸림이 없다는 뜻의 노래)를 부르고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 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 알게 될 정도로 불교를 군중 속에 퍼뜨렸다.

또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왕과 고승(高僧)들 앞에서 강론해 존경을 받았다.

그 후 참선과 저술로 만년을 보내다가 70세에 혈사(穴寺)에서 입적한 원효대사에게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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