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신라 여장 연구 귀중한 자료로 평가
삼년산성 발굴조사 설명회국내 최고성으로 사적 235호인 삼년산성 발굴이 마무리된 가운데 성의 상층부를 마무리 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발견됐다.
바로 동문지 부근 성 상면에서 여장이 발견된 것. 여장은 별도의 미석이 없이 외측 체성벽에 이어져 있으며 너비는 105∼110㎝, 높이는 70∼80㎝의 규모임이 밝혀진 것.
이러한 여장의 양식은 충주산성 동문지 북쪽 성벽에서도 일부 확인된 바 있어 삼국시대 신라 여장 시설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여장 내측의 성벽 윗면은 뒷채움석의 상면을 대형 판상할석을 깔고 그 위로 사질토를 다짐한 후 다시 점토질의 흙을 다져 성벽 윗면으로 사용한 것이 밝혀진 것이며 성벽 윗면은 성외측에서 내측으로 계단상 경사지도록 정리한 것도 밝혀진 것이다.
지난 18일 발굴용역을 맡은 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원은 문화재 위원과 문화재청 관계자, 보은군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에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번 현장설명회는 2차 발굴조사 부분에 대한 설명회로 2차 발굴조사는 동문지를 비롯해, 남문지, 북문지 및 동문지 내측의 평탄지와 건물지를 포함하고 있다.
남문지에서는 확쇄 안수가 붙은 채로 출토돼 문구부 외측에서 남문지로 통행하는 시설이었음이 확인됐다.
특히 지금까지 산성의 문지에서 출토된 확쇄는 양주 대모산성에서 아래 확쇄가 출토된 예는 있으나 위·아래가 모두 출토된 것은 삼년산성 남문지가 처음인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었다.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었던 동문지는 꺾어서 성내로 통행하는 독특한 구조의 성문양식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노출됐던 성문은 몇 차례 개축과정을 거쳐 조선시대 가장 마지막에 사용된 문임이 확인됐다.
삼년산성을 처음 축조할 당시의 동문지는 현문식 개구부와 성 내측으로 내옹벽을 갖춘 문지였으며, 이후 이 문지가 성벽의 하중과 북쪽 경사면의 흙의 압력으로 인해 붕괴된 후 몇 차례의 수축과정을 거쳤다는 것도 밝혀졌다.
지표상의 차단벽을 갖춘 성문으로 추정됐던 북문지는 축조 당시의 문지가 아닌 조선시대 새로 만들어진 문지라는 것도 밝혀냈는데 축조 당시의 북문지는 당초 암문으로 추정됐던 서쪽 함몰부에 대한 조사를 통해 문지의 유무를 확인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이번 2차 발굴조사 결과 3동의 건물지를 밝혀냈는데 모두 구돌을 갖춘 조선시대 군기 창고와 관련된 건물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중원문화재연구원과 문화재 위원들은 △향후 삼년산성의 보존관리와 문터의 추가 조사문제 △보수된 성벽의 재보수 필요성 문제 △기타 삼년산성 학술조사의 추진과 관련한 문제 등은 서면으로 의견을 받아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10월2일 보은군에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2001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삼년산성 보존관리 종합계획을 수립, 1차년도 아미지 발굴에 이어 2차년도는 2003년 11월 문지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발굴을 기초로 한 정비와 함께 성내 보은사 이전 및 진입로변 토지매입 등을 통해 2006년까지 삼년산성의 보존관리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 삼년산성 어암리 쪽으로 나 있는 남문지 모습. 칼로 두부를 자른 듯 정교하게 쌓은 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동문지쪽에서 발굴된 여장.
▲ 남문지에서 발견된 확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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