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필(보은 BBS 회원)
오래된 사진첩. 21년전 결혼 사진에 신랑 신부가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보인다. 신랑 친구 대표로 고향에서 온 금산 친구가 반 이고, 보은에 와서 사귄 친구가 나머지 반 이다. 초등학교 부터 고1 까지의 학창 시절이 10년 이고, 17살 부터 시작한 보은 생활이 27살에 결혼을 하였으니 그것 또한 10년 이다. 묘한 일이다. 멋도 모르고 시작한 17살 소년의 장삿길, 보은에 있는 보은중 23회 동갑내기들은 생면부지인 나를 친구로 받아 주었다.가게에 물건이 들어오면 다들 쫓아와서 같이 날라주고 시멘트 먼지와 땀이 범벅인 채로 보청천으로 달려가 멱 감던 친구들 , 혈기방장했던 시절, 음주운전이 죄가 안됐던 시절에 그 험한 쾌속의 질주에 흔쾌히 동승을 해주기도 하고, 2.5 t 타이탄 (그때 당시 제일 작은 소형 화물차)을 끌고 안내면의 육각정 공터에서 운전 연습을 했던 친구들, 정이 시려 많이도 울던 시절 여자 친구의 절교에 드라이진을 마시며 죽고싶은 심정을 말하고 들어주던 친구, 대구에서 군생활하는 훈련병을 찾아와 울고가던 친구, 서로의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자식같은 친구들.
열식구와 함께하는 장남의 길, 흔치않은 이력임에도 겁도없이 살수 있었던 것은 보은 친구들의 격려와 위로와 이해가 그리고 친구들이 쳐준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있었기에 모든것이 가능했다고 생각 한다. 지금, 그때 그 정겨웠던 보은 친구 중에 친구로 남아 있는 친구는 한명도 없다. 또 하나의 묘한 일이다. 한쪽은 전체가 남아있고, 한쪽은 전체가 사라졌다.
왜? 그것에 대해 이글을 정리하기전 초안에는 A4용지 1장반 분량의 해답이 있었지만 이곳에는 적지 않기로 하자. 그냥 이글을 만나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두자. 잃어버린 친구들의 정답은 다를 수 도 있는 것 이니까. 객지 사람은 돈 벌면 보은을 떠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 한다. 어울려 주는 사람이 없으니 장사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고, 장사에 열중할 수 있으니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고 그 장사를 안해도 살만하니 친구가 그립고, 그 정을 찾아서 아니면 객지, 고향 구분없는 넓은 세상으로 간 것이라고.
아는 사람들 집, 동문들 집, 회원들 집을 팔아줘야 한다고 흔히들 말을 한다. 모두가 동창과 아는 사람, 회원들 집을 나태와 안일로 몰아 넣어 자생력을 잃게하고 만다. 결과는 어떠한가? 그런 도움없는 타향에서 온 사람들이 더 성공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별수없이 이 보은 사회에서도 실력이 우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아는 사람 운운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이중성이 숨겨져 있다.
솔직해지자. 상황이 그럴지라면 이제 그만 케케묵은 객지, 보은사람을 구분 짓는 사람을 유치하고 치졸한 사람으로 일소해 몰아 부치고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보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반겨 주는 것이 오늘 이 시대에서의 보은이 가져야 할 우리의 발전적 사고 방식이라고 계몽을 하자. 한사람의 타향 사람이라도 보은에 들어오면 그것은 문화의 유입 이다. 그 문화의 좋은 점은 배우는 자세로, 문화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수반하지만 서로가 겪는 고통은 우리가 더 넉넉한 편이니 감수하고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도록 하자.
인구가 준다고 하면서 정작 들어온 사람을 융화시키지 못하고 좋은 이웃를 놓치는 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겠는가? ‘청정 보은을 위하여’ 라는 구호가 난무하다. 속리산을 기점으로 관광 활성화를 해야 한다고 무성도 하다. 기업을 유치하고, 골프장을 짓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유동인구에 고정인구 까지 더 많아지는 보은의 미래를 모두 다 꿈꾸고 있지만, 그 모든것이 우선 푸근한 인심이 이 땅에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말 한마디 마다 멋없게 들린다면 기업을 누가 이곳에다 세울 것이며, 누가 전재산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투자를 하려고 하겠는가? 정겨운 인심이 없는 곳에 와서 아무리 淸에 淨을 더한 그림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한들 그것이 멋있게 보여질 수가 어찌 있겠는가? 정이 섞여 있지않은 음식이 암만 산해진미를 무색하게 한들 어떻게 그것을 맛있다고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인정있는 마음씨가 ‘인심’ 이라면 그것은 그 어떤 시설물이나 기업 유치 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더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을 바로 알자.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선배가 한마디 한다. 보은읍에서 태어나서 자기 나이만큼 살았는데도 고향에서 객지 설음을 갖고 산다고.
내북, 보덕, 속리 중학교 출신 후배들이 말 한다.
우리는 이방인 이라고. 군청이 직장인 남편을 둔 아주머니가 신문에 투고를 한다. 보은이 타향인 남편이 너무 힘들어 한다고. 누가 만들어 놓은 법이고 질서 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지배하는 이상한 세상, 그곳에는 아직도 중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미숙하고 엉성한 벽이 보인다.
그 담장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 벽을 허물고 밖으로 연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때 우리는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알 속에 있다. 알은 세계 다. 그 알을 깨고 나와야만 날개를 펼칠 수가 있다.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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