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전에 헌신하는 '의지의 보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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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에 헌신하는 '의지의 보은인'
  • 보은신문
  • 승인 1990.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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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약품(주) 대표이사겸 회장 어준선씨―
보은군민에게 친숙한 인사이며, 신념과 의지의 삶을 추구하는 보은인― 그가 바로 안국약품(주) 대표이사 겸 회장인 어준선씨(54. 탄부 사직)이다.

어윤룡씨와 구용순여사 사이의 남매중 외아들로 태어나 탄부국민학교(제10회)와 보은중학교(제2회), 대전고(제35회), 중앙대를 졸업하고, (주)대농 말단사원으로 입사, 사회생활 8년만인 33세의 젊은 나이로 안국약품(주) 사장에 취임한 역량가인 그는 기나긴 출향생활중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는 애향인이다.

중농가정에서 자란 그는 조상이 물려준 가훈인 '신의'를 인생 철학의 근본으로 삼아 근검절약 정신을 생활화하며, 또한 스스로 자립정신을 기르면서 꿋꿋한 삶을 살아왔다. 무일품으로 시작해 사원 3백여명, 연간매출 1백억원 규모의 안국약품(주)를 이끄는 기업가로 서기까지에는 많은 난제들이 그의 앞에 다가섰고, 그는 불굴의 의지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낸 것이다.

안국약품(주) 사장취임 당시, 경영구조상의 취약성, 경제적 불황속에서도 어준선회장은 남모르는 투혼의 집념과 진취적 의지로 안국약품을 이끌어, 지난 77년 모범상공인 대통령표창, 84년 1백만달러 수출탑 수상, 85년 산업포장을 수상하였다. 자기 스스로, 또 중소기업계와 제약업계에서 그를 '의지의 사람'으로 평가하는 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의 의지는 대단하다.

지난 75년 정부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당시 각종 압력에도 불구하고 광고게제를 밀고 나간 것도 그 대표적인 실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어준선 회장은 당국에 의해 3일간 연행당하기도 했고, 세무사찰 등 회사운영에 제재를 받기도 했었다.

어준선 회장은 공산이론의 언급조차 엄격히 금기하던 때인 자유당 말기, 중앙대 경제학과 재학당시 칼 막스(K. Marx) 경제 이론중의 하나인 '궁핍증가설'을 번역, 대학 학회지에 발표해 이후 61년 일본의 <한국논총>에 게제될 만큼 대내외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지난 72년에는 한국 청년회의소 연수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오늘의 한국 청년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국 JC 강령 초안을 작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72년 2월 대한약품 공업협동조합이사장으로 있을 당시 그는 중소기업협동화사업의 하나인 40개 제약회사가 공동으로 입주하는 제약공단을 경기도 향남에 마련, 조성하는 주역을 맡기도 했다.

소위 '삼신(三信)주의'라 일컫는 '신념, 신뢰, 신용'의 자세로 사회활동과 경영 및 개인생활에 임하고 있다는 어준선회장은 경제학을 전공한 중소기업가답게 “지자제 실시에 즈음하여 지방소외 극복과 지역발전 도모를 위한 농촌경제 진흥과 중소기업발전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힌다.

어준선 회장은 “우리 보은에서 선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고속화도로의 보은경유 건설문제를 해결하여 보은의 어려운 입지적 조건을 해소해야 하는 것과, '보은의 정신' 발굴로 보은인 스스로가 장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높은 애향심을 가늠케 하는 것은 이외에도 매년 군내 소년소녀 가장돕기에 앞장서고, 탄부 사직국교 탁구부 코치의 봉급과 퇴직금 일체를 도맡은데다, 안국약품(주)내 사원 3백여명중 1/3가량이 보은인이라는데서 충분히 밝혀진다.

서울 연희동에서 부인 정영자씨와 2남3녀의 자녀와 함께 다복한 삶을 사는 어준선 회장은 현재 서울시 방위협의회원, 중소기업학회 이사, 한국제약협회 부회장을 맡아 활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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