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산성의 역사적 가치 입증시킨 차용걸 충북대 박물관장
“요즈음 옛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아직도 역사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안타갑습니다” 지난 '82년말 삼년산성 재발굴로 역사적 가치를 입증, 지역주민의 의식에 우리고장이 귀중한 문화재를 갖고 있다는 새로운 자부심을 불어넣는데 열림길을 만들어준 차용걸(40) 충북대 박물관장은 고향을 떠나있으면서도 우리고장의 역사적 고증가치가 있는 것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차용걸 관장은 “사적 제235호로 지정된 삼년산성은 고대성곽으로서 축성 기술 등의 면에서 역사적·학술적인 고증가치가 높다”며 “이는 신라가 발전해 오는 구체적인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데,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룸에 있어 중심적 군사기지로 이용되었으며, 태종무열왕과 당나라의 왕문도가 국제회담을 했던 유서깊은 곳”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갓난 아기일때 6·25전란으로 부친이 전사한 후 홀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환경속에서 성장한 차용걸 관장은 그가 태어나 살았던 회남면 은운리 마을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생활풍습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던 곳이었고, 의술과 풍수지리에 능통했던 조부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역사가가 된 계기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의 삶에 매여있는데 반해, 과거로 되돌아가 선조의 슬기를 발굴해내 다른 사람에게 널리 알려주는 나의 역할에 항상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차용건관장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그의 삼년산성과 고향에 대한 애착을 남다르다.
그래서 집을 지을때도 삼년산성의 평면구조와 같은 설계로 축소 건축하였고 현관은 삼년산성의 성문(문지·問祉)과 똑같이 만들어, 고향마을에서 가져온 대추나무와 어우러진 속에서 차교수와 가족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다.
'91년 보은 지역 민속품 수집작업 계획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차용걸 관장은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로 재직하다 지난 '80년부터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 교슈로 재임중이며, 부인 김영미(39)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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