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에서 정보수집 공직활동한 광복유공자 고(故) 정옥모 선생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멀리 중국 장사지방에서 광복운동을 전개, 혁혁한 공로를 세운 광복유공자 고(故) 정옥모(1924~1989. 5)선생.그는 보은군을 빛낸 큰 자랑거리이면서도 고향땅 보은에서 평범한 농부로서 살다, 지난 89년 조용히 생을 마쳐 이 사실을 아는 군민은 그리 많지 않다.
고 정옥모서생은 1944년 어린 나이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장사지방의 42지대 훈련병으로 입대하였다가 왜놈을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버릴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차라리 미약한 힘이나마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바칠 것을 결심, 인근 중국군 부대 지역 내에 한국임시정부가 있다는 것을 듣고 몇몇 동지들과 뜻을 같이하여 극적으로 탈출, 중국군 유격사단에 입대하여 유격대의 일원으로 아군의 기습부대 인도를 담당하며 혁혁한 공로를 세운 바 있다.
이렇듯 활동을 하다 다시 광복군에 편입되어, 정부수집 공작활동을 전개하다 45년 8·15해방을 맞이하여 일본군 무장해제에 참가한 후 46년 6월 귀국하였다.
귀국후에는 고향인 마로면 기대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평범한 농부로서의 삶을 살아갔는데, 원호처에도 공적이 알려지지 않아 82년에야 당시 함께 광복운동을 하던 동료의 여러차례에 걸친 연락으로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군에서 탈출할 때와 광복운동 중에 겪은 많은 고생으로 신병을 얻어 4차례의 대수술을 받는 등, 오랜 시간을 투병생활로 보내다 지난 89년 5월 사망,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치되었다.
“평소 말씀이 없고 완고한 성품이어서 자식들도 잘 모를만큼 남에게 자신의 광복운동을 알리기 싫어하셨고, 그저 평범한 농부로 살기를 바라 그렇게 살아오셨다”며 미망인 우남주여사(58)는 생존의 정옥모선생을 회고한다.
광복 45주년을 맞아 이젠 역사속에 묻혀 잊혀져가고 있는 지금, 정옥모선생 본가의 방 문턱에 걸린 빛바랜 대통령 표창만이 그가 광복유공자였음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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