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을 배움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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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을 배움의 터
  • 송진선
  • 승인 1990.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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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중학교를 찾아서
속리산 줄기 내려 정기내리고 보청천 비단물결 감도는 곳에 씩씩하게 자라나는 배움의 전당 영원히 빛나리 보은중학교

마침 학교를 찾은 시각에 보은중학교는 여름방학을 맞아 종업식을 하고 있었고, 교사와 학생들이 입을 모아 제창하는 교가소리가 전통 있는 학교 안을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보은중학교가 성립된 지 39년, 남학생 2학급, 여학생 1학급으로 출발했던 보은중학교는 지금 19학급에 8백70명의 학새들이 배움의 열기를 내뿜고 있고 과학실, 음악실, 합주실, 방송실, 컴퓨터실, 어학실, 자료실, 미술실, 양호실, 상담실, 도서실, 생활 예절실을 갖춰 학생들의 자질을 진작시키고 있다.

또한 보유하고 있는 시청각 기구만도 각 교실에 설치해 놓은 TV와 비디오, 녹음기, 스크린을 비롯 컴퓨터도 36대를 갖추고 있어 내일을 밝힐 등불이 되기 위해 지식을 쌓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밝고 맑은 참된 민주시민을 키우기 위해 황림재 교장과 여운각 교감, 그리고 36명의 교사들은 애국애족의 정신을 함양하고 공익과 질서를 존중하는 민주시민, 면학기풍을 조성하여 기초 학습 능력을 배양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인, 실험실습을 강화하여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선진 산업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인, 강인한 체력과 의지를 기르고 정서를 순화하며 소질을 조기에 계발(啓發) 연마하는 건강인,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는 성실인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쏟고 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51년 8월 31일. 보은 농업중학교 2,3학년 학생과 보은 여자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은 학제개편으로 보은 중학교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때 보은 중학교는 중학교 교사(校舍)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현 보은농고 뒷 교사에서 수업을 받았고 여학생들은 과거 왕산학교(천주교회 아래)에서 수업을 받는 등 교육적 여건이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이에 대해 이형필씨(1회)는 "농업중학교 3학년 때 학제가 개편되었으니까 사실 우리는 보은중학교에 소속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졸업을 한 셈"이라며 "그렇지만 보은 중학교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고, 후배학생들이 계속 학교를 빛내주고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도를 막아서 교실로 사용했던 당시를 회상하는 박대종씨(2회)는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에도 벌을 주지 못할 정도로 교실 공간이 좁았으니까 여름철엔 더욱 수업받기가 힘들었다"며 공부를 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어려운 환경을 견뎌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보은 중학교 여자부 학생들은 ’61년 여중으로 분리되어 나갈 때까지 왕산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따라서 주위사람들에게도 학적만 보은중학교로 되어있을 뿐 독립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비춰졌다.

왜냐하면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남자부, 여자부로 나눠져 있었고 일부 예·체능 교사들만이 통합하여 가르쳤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에대해 신영진씨(여자부 1회)는 "학제가 개편되어 보은중학교 학생이 되었지만 사실은 구 보은 여자중학교 학생이나 다름 없었어요. 지금은 동문회를 통해 얼굴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같이 수업받는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동문이라는 공감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사(校舍)를 짓기위해서, 학생들은 몇 명씩 조(組)를 이뤄 교사들과 각 마을로 다니며 학교 마련에 도움을 줄 것을 호소했었고, 어떤 집에서는 쌀 한 말, 또 다른 집에서는 보리쌀 한 되, 수수 한 말…

다들 생계가 곤란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했지만 내 자녀의 학교를, 우리 지역의 학교를 바라는 공통된 마음으로 1954년 11월 10일 학교를 세우기 위한 첫삽이 떠진 것이다. 흙벽돌을 찍어 한 장 한 장 쌓을 때마다 학생들은 ‘내 학교가 세워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부풀었었다.

그리고 1956년 2월20일 현 교정인 보은읍 이평리 30번지에 신축교사가 마련되었고, 남학생들이 이전하였다. 김홍락씨(4회)는 "그전까지는 남의 집에서 공부한 셈이었죠. 그러다 내 학교가 마련되었으니까 소속감도 더 생기고 자랑스러웠지요"라며 "비록 본교 교정에서 졸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후배들이라도 자신의 학교에서 졸업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얼마나 좋으냐"고 후배를 위한 소박한 정을 얘기했다.

1961년 5월27일 보은 여자중교등학교의 설립으로 보은중학교 여자부가 분리되었다. 보은중학교는 지금까지 39회에 걸쳐 총 1만5천1백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동문회는 전국여타의 중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어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서구 총동문회장(3회)은 "예절에는 전국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으나 요즘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고향을 잊지말고 고향발전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바램의 말을 전했다.

지금 보은중학교에서는 7월21일에 시작한 방학을 이용, 재능에 맞는 학습능력을 키우고 소질별 다양한 특기지도를 실시, 독서, 음악, 미술, 문예, 컴퓨터 등의 과학 영재교실과 양영수련으로 극기훈련과 건전한 청소년 생활지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바로 90년 3월1일 14대 교장으로 부임한 황림재 교장의 "학생들의 학과성적도 중요하지만 실력향상과 소질계발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 교사와 학생들의 풍토를 조성, 교사와 학생들의 동호클럽을 조직해 유대를 맺는다"는 교육방침에 따른 것으로, 이것이 곧 건전한 학교생활의 시작이 아닐까.

90년 들어 보은중학교는 달리기에서 군내 선두를 지키고 있고, 특히 지난 5월18일에 있었던 충북 소년체전 축구경기에서 청주 대성중학교를 물리쳐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으며, 도 교육위원회에서 실시한 과학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모두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유도와 로울러스케이팅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둬 보은중학교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동문회에서 설립한 교문과 우거복지관, 밴드악기는 선배들의 사랑과 함께 학교를 지키고 있고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학생들의 배움의 열기는 찌는 무더위를 여유롭게 식히고 있다.

8월 25일이면 방학이 끝난다. 그러면 8월31일 있을 개교 기념식준비로 학교는 한바탕 축제마당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런 선배와 사랑스런 후배는 끊이지 않는 연결로서 손에 손을 잡고 영원한 ‘보증인’으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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