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지켜온 터줏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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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지켜온 터줏대감
  • 송진선
  • 승인 1990.07.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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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 정직, 절약을 실천하는 박기종 전 국회의원
하얀 모시옷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걸려오는 전화와, 쌓여있는 서류의 결재로 하루를 시작하는 박기종씨(78)는 오늘을 사는 보은 역사의 산 증인이다.

비룡소 마을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원시절을 제외하고는 보은을 떠나보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서울의 아들 집에 들러봐도 낯설기만 해, 몇 시간만에 그의 터전인 비룡소로 돌아와야 비로소 고른 숨을 쉴 수 있다고 한다.

정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대한 곡물협회 충북 지회장으로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그는 "요즘 사람들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근면한 생활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너무들 낭비가 심하고 노력하는 생활 자세가 부족한 것 같아요"라면서 "생활은 풍요로와 졌지만 밀기울 먹고 생활하던 시절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과소비에서 벗어나 절약하는 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기종씨는 59년 7월 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이후 어느 누구도 보은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오지 못했고, 그것이 지금가지 보은인데게 어떤 한으로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기종씨는 의원생활을 채 일년도 못채우고, 5·16 군사혁명을 맞아 의원직을 떠나야 했다.

"당시 야당의원은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감옥 구경까지 하며 지낸 시절이었지만 정권의 현혹에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다"고 당시를 회고하는 박기종씨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마음가짐 때문에 고생많이 했지요, 뭐. 하지만 그런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지킬 수 있었고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일본말과 글을 배우면 안된다는 부모의 투철한 민족의식 때문에 비록 한문수학으로 교육은 마감했지만, 그 덕분에 후배들의 육영사업에 관심이 많아 그가 펼친 다양한 장학사업은 이루 말할 수 없거니와 그 액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근면, 정직, 절약하는 생활을 인생의 좌표로, 34세때부터 경영하고 있는 대동물산에 남은 힘을 다 쏟으며, ‘일한다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전 국회의원 박기종씨 그래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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