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 외길 40년 설용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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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외길 40년 설용술씨
  • 보은신문
  • 승인 1990.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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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질, 담금질, 풀무질로 지켜온 장인정신
보은읍 삼산1구 59번지 ‘남다리 대장간’ 가끔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을까 싶은 대장간, 대장장이 설용술씨(57)의 일터속에선 옛날의 장인정신이 물씬 배어나고 있었다. 한여름엔 옷을 짜야할 정도로 땀을 흘리는 힘든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그는 7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기에 1951년부터 풀무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쇠가 귀해서 쇠를 구하려면 대전까지 가야했어요. 그래도 어떤 때에는 쇠를 구입하지 못해 물건을 만드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지요” 힘에 부치는지 그는 열심히 두드리던 쇠망치를 내려놓고 ‘후-’하며 한숨을 쏟는다.

3∼4명의 점원들이 풀무질을 했던 그 자리에는 모터(motor)가 대신 숯불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호미, 괭이, 쇠스랑은 여전히 설용술씨의 손에서 제 모습을 갖추느라 두들겨 맞고 있다. 호미 하나에 50원 하던 시절에는 만들어놓기만 하면 팔려 나갔으나 공업이 발전하고 농기구도 기계화되는 지금 남다리 대정간을 찾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철물점으로 판매되고 있고 개인적으로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가끔 물어물어 찾아왔다면서 호미나 괭이 등을 주문하기도 해요.”

잘 만들었다고 고마워할 때 일의 보람을 느낀다는 설씨의 기술이 멀리 옥천, 안남, 청산, 경북 화령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알려진 것을 보면, 스러져가고 있는 한국의 맥을 지키는 그의 고집스런 용기가 바로 ‘끈기’라고 하는 장인 정신이 아닐까. 외길 40년. 처음 안대장간에서 대장일을 배우고 현재 보은 죽전리의 보은 대장간 유우현시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기까지 설용술씨와 함께 세월을 먹고 자란 화덕과 머리둑(쇠를 두드리는 받침)은 5, 6년후면 힘이부쳐 중단할 지도 모를 매의 흔적을 간직한 채, 여전히 시간을 엮어가고 있다.

살아가는 방법들이야 천차만별이지만 생활고(苦)까지 느끼면서 설용술씨가 지켜온 장인정신이 바로 4형제를 훌륭하게 키운 바탕이라며 환하게 웃는 부인 구광래씨(50)의 웃음속에서 진정으로 건강한 삶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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