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키우는 산외 이식국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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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키우는 산외 이식국교
  • 송진선
  • 승인 1990.03.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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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학생 70명밖에 안돼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을 딛고 하늘을 넘어 달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보은을 출발한 지 약 50분만에 이식에 닿았다. 하늘아래 첫 동네. 행정구역상으로는 산외면 이식리, 아이들의 꿈의 산실인 이식국민학교가 자리잡은 곳이다. 이번에 1학년 동생들이 4명 들어오면 2학년 9명, 3학년 13명, 4학년 10명, 5학년 16명, 6학년 18명, 전체 학생 70명이 교장을 비롯한 7명의 교사들과 꿈을 키우고 있는 곳이다.

이식, 어온, 가고, 중티, 적음 등 다섯 동네의 아이들이 적게는 1㎞에서 많게는 4㎞의 거리에 위치했기 때문에 교통편마져 불편한 아이들은 먼 거리를 걸어 다니기가 일쑤다. 빨강, 파랑, 찢어진 우산 등을 받쳐들고 지나는 버스에 누가 흔들어 주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손을 흔드는 고사리 손들의 정겨움에 문득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2월23일. 종업식을 하는 날이다. 아이들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손수건들이 들려있다. 오창균, 안희두교사가 청주로 전출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슬픔의 눈물을 꾹꾹 찍어내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 마음이 사랑스럽다.

이식리에 국민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구티에 있는 산외국민학교로 다녔다. 산비탈길로 20리를 꼬박 걸어서 다닌 것이다. “우리 아들이 산외핵교를 다녔는데, 짚신을 하루만 신으면 다떨어져 짚신 삼아 주느라고 혼났어”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안경호(81) 할아버지는 이식리 주변의 마을에 학생이 많아 국민학교가 세워져야 된다고 행정당국에 탄원하였고, 결국 1952년 4월30일 산외초등학교 이식분교로 인가, 54년 4월 1일자로 이식국교로 승격되어 가고, 어온, 적음, 이식, 중티, 산대2구의 학생들이 다니게 된 것이다.

“처음에 이식분교로 다닐 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말이 분교지 학교 건물이 없으니까 7∼8명씩 반을 편성하여 한명의 선생님이 학생들을 돌보았죠. 남의 집 사랑방에서, 공부하기도 하고 마을회관에서 하기도 하고, 우리는 지금 이식 국민학교에서 졸업을 못했어요” 가교사를 짓기위해 학교앞 비약산에서 목재를 해가지고 초가집을 짓는 등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안상복(1회)씨는 감회어린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학교는 당시 안중진씨(53)의 선친이 종터 3천평 정도를 희사했고 목조건물 5칸 정도의 교실에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학교건물은 학부형들이 부역을 나가 지었지. 자식들이 공부할 곳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하며 껄걸 웃는 안경호씨(81)는 학교를 직접 지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1971년 12월20일 향토개발 우수학교로 표창을 받은 이식국민학교는 대자연의 심오함과 섭리를 학습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도회지 아이들의 어색한 쌀나무니 고추나무니 하는 주입식 교육에 비하면 이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식에는 달리 문화시설이 없기 때문에 방과후나 일요일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자연스럽게 「온종일 학교」가 이루어진다. 냇가에 나가 송사리를 잡고 산에 가서 나물을 캐며 꼬부라진 할미꽃 노래를 부르는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정도헌 교감은 “한 학급에 최고 60명이 넘는 대도시 아파트지역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이름을 외우기도 힘들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 각 가정의 부엌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도 다 알게 될 정도”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생의 능력, 가정환경, 신상 등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고 1대1 대면학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도 좀더 소상히 알 수 있다.

물론 한 교실에서 2개학년 이상이 수업하는 복식학급으로 운영상의 애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도시 학교처럼 콩나물 집단에 매몰되어 버리는 익명의 학생은 없다. 사람들은 벽지의 학교를 교육의 「가막소」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콩나물 교실과 2부제 수업에 시달리는 대도시 지역 학생들에게는 한 교실에 15명 안팎의 학생들이 서당식으로 수업을 하는 이 학교의 풍경이 파라다이스로 비춰질 수 있다.

교실 5개에 교무실 1개, 교장실은 너무 넓어 반으로 나눠서 사용하고 있다. 1학년과 2학년이 복식수업을 하기 때문에 13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 개구쟁이 동생들과 코흘리개 형님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니 형님들의 행동은 어줍잖은 의젓함에 조금은 웃음이 배어난다. 70명의 학생들이 가족처럼 지내는 이식국민학교에는 다른 학교와는 달리 과학놀이 교실을 마련(컴퓨터, 전자게임기 블록등)하여 창의력과 탐구력 개발을 위해 방과 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어학 실습실(Lab)을 마련하여 외국어 습득을 위해 요일마다 학년별로 나눠 실시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배우면 전부들 도회지로 나가니께 애들이 없어요. 저 큰 핵교가 없어질까 걱정이 되네요”하는 안씨네 할머니(80)는 큰 걱정을 한다. “우리 증손녀가 내년이면 핵교에 가야되는데 그때되면 학생이 어찌될까 모르겠네요. 없어진다구도 하던데” 이 노할머니의 근심어린 표정이 이식 국민학교에섬만 겪는 것은 아니다. 80년대에 들어 급격히 증가한 이농현상으로 인해 농촌 소재의 학교는 거의 폐교, 분교로 강등되기가 일수다. 교사 1명에 학생이 많아야 10명 정도이다. 대도시 지역의 1대 60이 되는 학교에 비하면 행복한 현상이겠지만 어찌보면 2세 교육을 담당하는 인력의 손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지마을의 학교가 폐교되고 학군을 묶어 버스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칠봉산을 바라보는 이식초등학교 학생들이 바로 그 학교버스를 이용할 날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종일 학교가 이루어지는 이식초등학교 풍경을 어쩌면 선배들은 계속되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 출신인물
김승구(4회. 울산에서 중소기업체 운영) 송석규(5회) 임성만(7회. 청주 중소기업체 운영) 송순철(7회. 청고 교사) 조중제(15회. 충북대 수학교육과 교수) 윤일근(16회. 충북은행 보은지점대리) 안형상(16회. 신세계백화점 영업부) 박영식(10회. 육군중령) 김홍운(18회. 공군소령)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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