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 벼꽃이 필 무렵 여름 내내 비로 얼룩져 벼 낫알이 결실을 다 못하고 보기흉한 벼 이삭들, 그러나 이젠 가을 추수를 기다린다.
검푸렀던 산맥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가을 국화는 온 누리를 향기로 장식한다. 2010년 저물어 가는 또한 선을 그어야 하는 등고개 인생무상이 가슴을 스친다.
잡을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세월에 수레바퀴 속에 희미한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초롱했던 그 정신력, 뾰족 뾰족 새싹인생, 세월 속에 묻혀가고 누구도 부인 못하는 인생 고개, 서서히 깊어가는 밤에 귀뚜라미도 가을을 재촉하는 울음인가.
철새들도 계절따라 오고가고 기러기떼는 하늘을 수놓으며 올 준비에 바쁘다. 인생 무상 저무는데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고향 생각이 난다. 고향 한 발치도 못 옮기고 살아온 어린시절 석천함이 그리워라.
석천함은 어리로 사라졌나. 몰지각한 후손들이 문화재를 헌신짝처럼 버렸단 말인가. 어린시절 학당들이 모여 앉아 "동거라 춘래라 화밭이라, 하당이 상상이라 개문이라 타종이라" 선생하고 구수한 목청으로 읊던 어린시절 노랫말이다.
보은 성족리에서 태어난 큰 일물, 자는 원충 호는 충암 본관은 경주 김씨 정랑 효정의 아들이며 판도파서 장규공의 후손이다.
1540년에 합격하여 1507년 중종 2년 증광문과에 장원 정언등을 거쳐 순장군수 때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였다. 보은 함림역에 유배되었다가 1516년 중종 11년에 풀려나와 응교 전한에 임명됐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뒤에 부제학 동부승지로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겸 홍문관 제학 대사헌을 지내고 뒤에 형조판서로서 예문관제학을 겸임했다.
다음은 충암이 제주도로 유배갈 때 해상에서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소나무에서 진 시다. 명예도 역사 속에 묻혀간 시 석천암.
바닷바람 불어오니 솔잎에 슬픈소리 멀리 울려가고
산위에 달 외로이 떠오르니 솔잎있는 가지 그림자 성글기도하다.
곧은 뿌리 땅 밑 깊이 뻗어 있으니 눈과 서리 격은 모습 완연하구나
가지는 꺽인 채 잎새는 삼사 도끼 찍힌 몸을 모래 위에 눞혔노라
기둥감이 되겠다던 소망은 끊겼는가
뻣뻣한 그대로 해상에 떠도는 신선에 뗏못이나 되어 흘러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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