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이때부터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처럼 무더운 여름에서 벗어나 비교적 한가하게 농산물의 막바지 결실을 지켜보는 때이기도 하다. 예전에 조상들은 여름동안 장마 습기에 젖은 옷이나 이불, 책 등을 음지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를 이 무렵에 했다.
가을은 한 해의 자연환경과 농부의 노력 등 모든 것이 결산되어 유종의 결실을 맺는 시기이다.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는 산들거리고 고추잠자리는 파란 하늘을 난다. 눈을 감아도 넓게 펼쳐진 황금 들녘이 선하고 농부의 마음은 왠지 풍요롭다. 가을은 바삐 사는 도시인들에게도 감상적인 센티멘털리즘에 빠지게 한다. 정용철시인도 '9월이 오면'에서 '잊고 지낸 당신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고…….당신에게 편지도 써서 보낼 것이며……. 고통도 사랑인줄 알고…….이별도 사랑인줄 알며…….익어가는 모든 것이 사랑이며……. 들판의 바람처럼 달려가 당신이 흘린 그리움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했다.
가을은 또한 황혼기에 접어드는 연령대의 사람들도 감상에 젖게 한다. 자신의 인생여정이 연중 가을처럼 이제 종착지에 다 달았음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래서 가을의 노래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환희'이고, 여름은 '열정', 겨울은 '침묵'이라 한다면 가을은 풍요로움의 기쁨과 스러지는 아픔을 동시에 갖고 있다. 가을 산야를 둘러보면 그 이치를 알 수 있다. 오곡백과의 결실을 맺게 한 푸른 잎사귀는 스스로의 역할에 자축하듯 노랗고 붉은 화려함으로 치장한다. 그리고 세상 온갖 것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짓밟으며 살아남았던 한 해의 여정이 여름밤의 꿈과 같았음을 깨달은 듯 이내 낙엽이 되어 땅에 뒹군다.
50대 이상의 분들은 '리칭의 스잔나'라는 홍콩영화를 기억 할지도 모르겠다. 1967년 방영되어 눈물을 훔치게 했던 하몽화 감독의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 청춘영화의 붐을 낳게 했었다. 특히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주인공 리칭이 주제곡 '만추(晩秋)의 노래'를 직접 부르는 애틋한 장면은 관람객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부네.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었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내 생명 오동잎 닮았네.
모진 바람을 어이 견디리.
지는 해 잡을 수 없으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
봄이 오면 꽃피는데 영원히 나는 가네.'라는 노래와 가사는 당시 인기가수 정훈희, 문주란 씨가 불렀고 시대상을 반영하듯 많은 젊은이들도 읊조렸다. 이처럼 가을은 사람들을 허무감에도 젖게 한다.
음양오행설에서 가을의 색깔은 흰색인데 이는 생명의 색이기도하다. 자연계에서 태초 생명은 모두 흰색이다. 사과 씨가 검지만 그것은 표피의 색일 뿐이다. 따라서 가을은 한 여정의 끝인 동시에 시작을 의미한다.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윤회의 계절인 것이다. 많은 이 들은 겉으로 보이는 '시작과 끝'만을 안다. 안으로 진행되는 '끝과 시작'은 잘 알지 못한다. 정치권력도 이와 같다. 영원한 무소불위(無所不爲)로 비쳐지지만 언제나 끝남은 왔고 새로움이 움텄다. 가을처럼 항상 그랬다. 요즘 위정자들의 아집을 보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통치철학이라곤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충고해 줄 정치, 종교계의 큰 지도자도 이젠 없다. 그들 스스로 가을의 섭리를 깨닫게 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이번 가을은 더욱 가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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