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아이니’ ‘워쌍니’ 로 사랑과 행복 두 마리 토끼 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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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아이니’ ‘워쌍니’ 로 사랑과 행복 두 마리 토끼 잡다 ”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09.12.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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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최미옥 부부
▲ 잠들어있던 아들 태준이를 깨워 온 가족이 자세를 취했다. 비몽사몽(非夢似夢)임 에도 불구, 태준이가 보행기를 타고 멋진 자세를 취해주었다.
우리 선조들이 말 타고 활 쏘며 칼 휘둘렀다는 광활한 벌판 북만주. 지금은 중국 헤이룽장 성(흑룡강 성)으로 불린다. 헤이룽장 성 하얼빈에서 송화 강(쑹화 강)을 따라 동북방향 러시아 국경 쪽,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자무쓰 시(佳木斯)가 있다. 공업도시이자 한약재의 집산지로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약 400호 정도의 조선족 마을이 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평균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고 10월부터 3월까지가 겨울에 해당된다고 한다.
최미옥(28) 씨는 이역만리인 한국의 박원석(37) 씨와 세상인연이 닿아 지난 2008년 8월 18일 입국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는 8, 9, 6 순. 특히 8은 재물이 생긴다는 ‘파 차이(發財)’로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보은군으로 시집 온 날에 8이 무려 3번씩이나 들었으니, 이들 부부의 재물 운은 ‘떼놓은 당상’처럼 보인다.
미옥 씨는 중국에서 왔지만 실제는 한국의 정통 명문 성씨 중 하나인 경주 최 씨 후손이다. 1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본관은 경주로 고향 역시 경주였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 만해도 경주를 자주 찾았었다. 자무쓰에는 조선족 학교가 없어 아버지 최경범(47) 씨는 물론 미옥 씨조차, 순전히 중국식(한족)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한국말이 서툴렀으나 할아버지는 한국말을 잘해 손녀사위 원석 씨가 맞선 볼 때나 당시 중국 결혼식 때에도 통역을 도맡아 해주곤 했다.

# 중국에서 시집 왔지만 실상은 한국의 명문, 경주 최 씨 가문의 딸

원석 씨가 미옥 씨를 만나게 된 것은 사진 한 장의 인연 때문이다. 원석 씨는 4형제 중 막내다. 형님들은 모두 사업을 한다. 직장 생활을 하던 원석 씨는 보은읍 용암에서 청각장애인인 홀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시집오려는 한국 신부들은 없었다.
다문화가정을 꾸미고 살던 지인이 사진을 한 장 주며 한 번 만나보라고 했다. 비행기도 한번 타보고 싶었고, 난생 처음 외국구경도 하고 싶었다. 여권도 만들고 비행기 표를 구해 중국 하얼빈으로 무작정 날아갔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진 속 그 녀는 친절했다. 말은 잘 안 통해도 뭔가(?)가 통했다.
미옥 씨는 당시 우리나라 농협 매장과 같은 대형 의류 쇼핑몰에서 5년 째 점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카리스마를 가진 미옥 씨가 용기 하나 뿐인 원석 씨를 요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전문 결혼중매업소를 통하지 않아서인지 한국으로 입국하는 서류절차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그마치 9개월 동안이나 원석 씨는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매일 중국으로 전화를 걸어 ‘워아이니’(당신을 사랑해), ‘워쌍니’(보고 싶어) 단 두 마디를 반복하며 사랑을 호소했을 뿐이었다. 막판에는 직접 들어가 손을 붙잡고 나왔다. 그 날이 바로 2008년 8월 18일이었다.

# “아이가 바뀌었다 !” 혈액형 오인으로 빚어진 아내에 대한 평생의 빚

미옥 씨는 무남독녀 외딸이다. 신랑과 함께 중국 고향을 떠나던 날 미옥 씨 부모들의 애끓는 혈연의 정이 얼마나 컸을 지 상상이 간다. 미옥 씨의 아버지는 보일러 설비 일을 한다. 겨울이 6개월간이나 지속되는 이곳 북방도시 자무쓰에서는 중요한 직업군이다. 어머니 리펑메이(47)는 한족 여성이다.
미옥 씨는 신혼 초, 약 5개월 간 시어머니 손중식(63) 씨를 모시고 용암 리에서 살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모는 며느리를 끔찍이 사랑했다. 며느리의 말하는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인지를 충분히 이해했으며 모녀처럼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출산일이 가까워 오고 마침 원석 씨 셋째 형이 용암리 집으로 들어오면서 이들 신혼부부는 보은읍 주공아파트로 분가해 나왔다. 하지만 지금도 고부간의 만남은 눈과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보은장날에는 같이 시장구경도 다닌다.
원석, 미옥 부부의 첫 아들 태준 이는 7개월 전인 지난 5월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당시 병원에서 태준 이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말에 난리법석이 났다. 자신의 혈액형이 ‘O형’이라고 믿었던 원석 씨는 “내 아이가 아니거나, 바뀌었다”고 역시 ‘O형’인 아내 미옥 씨를 닦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 혈액형이 같은 ‘O형’이면 ‘O형'의 혈액형만을 가진 자녀가 출생하는 것이 유전법칙이니까. 억울한 미옥 씨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래서 마지막 확인 수단으로 부부의 혈액형을 검사하자 이게 웬일인가. 원석 씨의 혈액형이 글쎄 ’A형'으로 확인된 것. 쥐구멍이 어디 있나. 애꿎은 아내만 잡았으니 평생 안고가야 할 마음의 빚이 되고 말았다.

#노래 소리에 반하고, 장모의 사위사랑에 취해 곳간열쇠 넘겨주다

더구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때 산후조리를 위해 장모도 마침 한국에 와있었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움에 원석 씨의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하지만 장모의 사위사랑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똑같나 보다. 사위의 아파트 입주보증금 중 부족했던 200여만 원과 미옥 씨의 제왕절개 수술비를 중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선뜻 지원해 주었다. 또한 1년여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틈틈이 번 돈으로 아파트 관리비도 대신 내주곤 했다. 이렇듯 신혼생활에 보탬이 됐던 자상했던 장모는 지난 11월 자무스로 돌아갔다.
원석 씨가 드디어 “아내는 노래를 너무 잘해요. 노래에 반했다”고 아내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결혼 초부터 통장관리도 다 맡겼다”고 실토한다. 미옥 씨는 “한국노래는 장윤정의 ‘꽃’, 중국노래로는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사랑을 말하는 첨밀밀(티엔 미미)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원석 씨가 이렇게 아내 미옥 씨를 치켜 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을 법 했다. 물론 그것은 가정의 행복 때문이다. 축협사료 운반을 하는 원석 씨는 아직 혈기가 왕성해 일 끝나고 술 마시기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고로 카드결제 청구서가 빈번히 날아온다. 뜻하지 않은 지출은 가정경제운용을 책임진 미옥씨에게 있어 비상사태다. 신혼 초에는 서로의 이해부족으로 말다툼도 잦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아내는 화난척하며 넘어가준다. 원석 씨는 그런 아내가 고맙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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