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 착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팡정 새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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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착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팡정 새댁”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09.12.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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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만, 위하이포 부부
▲ 웃으면 복이 온다했던가. 다정스레 느껴지는 부부의 정이 웃음을 평화롭게 한다. 딸 예희도 이를 아는 듯 덩달아 웃는다.
한국에서 특별한 삶의 이력은 아직 없다. 시집오기 2년 전 이미 시모가 돌아가셨으니 유별나다는 한국의 ‘고부갈등’을 겪지 못했다. 즉 ‘구박과 잔소리’로 대변되는 한국 시모들의 ‘며느리 교육’이 생략된 셈이다. 겨우 눈치코치로 익혀 반찬을 만들어보지만 음식솜씨도, 한국말도 쑥쑥 늘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이 피고, 망치질 속에서 강철이 단련되듯 역시 시모의 혹독한 며느리 사랑(?)이 있어야 음식을 비롯하여 살림솜씨와 한국말 실력도 빨리 느는 비결이 되나 보다.
이종만(36)씨의 아내 위하이포(于海波 26)씨는 이름이 ‘바다파도처럼 가다’란 뜻처럼 중국에서 이역만리 대한민국 그 중에서 충청북도 보은군으로 시집을 온 만 2년차 새댁이다.
지난 2007년 6월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하얼빈시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같은 해 11월 한국에 입국했다. 당시 맞선 때는 종만 씨가 아버지 이성재(63) 씨와 함께 하얼빈 팡정(方正)에 갔었다. 이곳은 조선족과 한족이 거의 같은 비율로 사는 지역으로 많은 중국 처녀들과 맞선을 보았다. 그 중 하이포 씨가 유독 눈에 띄었다. 손에 굳은살도 있었다. 심성도 착해 보였고 농촌지역출신이니 한국 농촌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 대단한 입덧 탓에 시아버지 등 온 가족들의 보살핌 받아

종만 씨의 고향집은 보은군 장안면 오창리다. 아버지는 축산업에 종사한다. 누나는 결혼해 대처에 살고 2명의 남동생 중 둘째 종호(33) 씨는 아버지를 돕고, 막내 종학(30)씨는 직장에 다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간은 집에서 안살림을 도맡아 할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3형제 등 모두 남자들 뿐 이었다. 형제들 중 제법 음식솜씨가 뛰어난 둘째 종호 씨가 늘 식사당번을 했지만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이때쯤 하이포 씨가 ‘짜~잔’하고 오창리에 출현한 것이다. 환희에 젖었을 남자들의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 필요하랴. 집안 청소, 빨래, 식사 등 모든 문제가 단박에 해결됐다. 뿐만 아니라 ‘꽃 같은 며느리’ ‘사랑스런 아내’ ‘ 믿음직한 형수’가 시집왔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만 했다. 실제로 시동생 종호 씨한테 한국 반찬조리기법을 며칠 만에 배워 척척 흉내를 냈다. 시간이 갈수록 먹는 고통에서 먹는 즐거움으로 점차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래 즐거운 시간은 고통의 시간보다 짧게 느껴지는 법. 그만 하이포 씨의 대단한 입덧이 시작되고 말았다. 종만 씨를 비롯해 시아버지, 시동생들 모두가 아내, 며느리, 형수 챙기기에 나서야만 했다.

# 중국 친정집과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고향 그리움 달래

사랑스런 아내가 원한다면 ‘하늘의 별’인들 못 따다주랴. 하이포 씨는 수박만을 찾았고, 종만 씨는 한 겨울 수박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어야 했다. 한 10통 정도의 수박과 입덧을 잠재운다는 한약을 먹고서야 요란했던 입덧을 잠재울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을 고생시켰던 입덧의 주인공 예희(2)는 지금 수박넝쿨처럼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입덧이 끝나자 곧 출산시기가 다가왔다. 집에는 남자들뿐이다. 산후조리는 누가 해줄 것인가. 시아버지가 며느리에 대한 배려로 결단을 내렸다. 중국의 사돈부부를 초청하는 한편 종만, 하이포 부부를 보은읍 이평리 주공아파트로 분가시켰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예희를 순산했다.
종만 씨의 장인 위나이명(52), 장모 리수운(52)씨는 외손녀 덕에 한국에 초청되어 3개월간 하이포 씨의 산후조리를 해줄 수 있었다.
하이포 씨의 친정집은 벼농사를 짓는다. 집안에는 자동차 수리 점에 다니는 오빠와 자신, 오누이 뿐이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시집오던 날 친정 엄마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런데 한국을 왔다 간 뒤부터는 달라졌다. 맘이 편해 졌나보다. 중국집에도 인터넷이 있어 지금은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친정 부모들과 서로 얼굴을 보며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한다.
#남편이 즐기는 취미생활 불만대신 가정경제권 넘겨받다

종만 씨는 꽃집에서 일을 한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힘든 일이라고 했다. 일요일만 쉰다. 그런데 종만 씨의 취미는 조기축구와 누어낚시다. 새벽에 일찍 나가거나 휴일 날 취미 생활하러 나갈 때가 종종 있다. 당연히 하이포 씨는 불만이 생긴 척 했다. 현명한 종만 씨는 대신 가정 경제권을 일임했다. 충분히 쓰고 남을 만큼의 풍족한 돈은 아니지만 돈 관리는 하이포 씨를 즐겁게 한다. 아파트 관리비도 챙기고, 시장에 가서 가족을 위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고, 또 저축도 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통장관리를 직접 한다는 것은 곳간 열쇠를 내리받았다는 것이어서 기분이 좋다. 통장에 잔고가 얼마인지는 남편은 물론 예희에게 조차 ’절대 비밀’이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는 주변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이포 씨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일주일에 한 번 씩, 반찬 등을 만들어 시아버지와 시동생들에게 간다. 가서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한다. 맏며느리 역할을 해 내려고 열심이다.
하지만 한국생활을 비롯해 결혼, 엄마역할 등 각각 2년 차에 불과한 하이포 씨는 아직 모든 게 힘에 부친다. 따라서 종종 주변의 도움을 받곤 한다. 종만 씨의 외할머니와 이모는 김치 등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말 선생님은 일주일에 두 번 언어교습을 위해 집을 직접 방문한다. 그래서 종만, 하이포 부부는 세상 모두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산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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