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화목하고, 마음도 편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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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화목하고, 마음도 편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네 ”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09.10.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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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용, 호티 끼우 부부
▲ 행복이 충만한 표정 앞에서 무슨 설명이 따로 필요할까. (오른쪽부터) 호 땅리, 창완, 장티 김끙, 끼우, 정완, 박태용, 진완.
박태용(49), 호티 끼우(28) 부부는 보은재래시장 초입부분에서 ‘즉석 두부’가게를 운영한다. 취급품목은 주 종목인 즉석두부 외에 도토리묵과 베트남 식품류이다.
가게 벽면에는 태용 씨가 스티로폼상자 뚜껑에 사인펜으로 직접 쓴 ‘어느 날 두부를 만들면서’라는 자작시와 가족사진 등이 걸려있다. 자작시 내용은 ‘가정이 화목하고 마음도 편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네’라는 새 가정을 꾸리고 나서의 행복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볼 때 태용 씨는 참 가정적인 남자다. 술, 담배, 도박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슬픔’ ‘고통’ ‘아픔’ ‘상처’ ‘괴로움’ 등 처절함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나열된 글을 보면 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온 사내임을 알 수 있다.
태용 씨는 두 번이나 이혼을 해야 하는 인생항로를 겪었다. 무슨 이유때문인지 인생이 꼬여 있었다. 진완(14), 창완(13) 두 아들과 거의 5년간을 방황 속에 남자들끼리만 산적도 있었다. 즉석두부가게를 창업했으나 무언가 허전했다. 행복감이 없었다. 두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가정이 필요했다.

# 새벽 즉석두부 만들고, ‘투잡’하는 바쁜 삶 속에 웃음꽃 피는 가정
2006년 7월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끼우 씨를 만나 세 번째 결혼생활에 도전했다. 그녀는 2007년 3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2년 6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보은재래시장 내, 아역 인기스타가 된 정완(2)이를 낳아 길렀다. 태용 씨는 방긋 웃는 정완 이의 얼굴마냥 늘 웃음꽃 피는 행복한 가정을 다시 갖게 됐다.
태용, 끼우 부부가 이렇듯 자타가 인정하는 행복한 다문화가정이 된 데는 사실 온가족의 노력 덕분이다. ‘가난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행복은 창문을 열고 나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태용 씨는 새벽에 일어나 끼우 씨와 즉석두부를 만들고 낮에는 화물 중고자동차 매매업에 종사한다. 요즘말로 ‘투잡’을 한다.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진완, 창완 형제도 행복한 다문화가정 만들기에 열심이다. 외국에서 시집 온 새 엄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특히 둘째 창완이는 엄마 도울 일을 찾아서 챙긴다. 동생 정완이 봐주기에는 형제간 위아래도 없을 정도다.
# 행복한 다문화가정 만들기에 협심, 노력하는 개성만점의 가족들
진완 이는 새 엄마가 온지 10개월 째 쓴 첫 편지글에서 ‘언제나 엄마 곁에서 오른손, 그림자가 되어드리고 싶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한 창완 이도 ‘미움과 두려움이 있었던 가정을 기쁨과 사랑의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해준 엄마를 사랑한다.’고 썼다.
끼우 씨는 이른바 ‘노력파’다. 베트남에서 결혼식 후 한국에 입국하기 전 8개월 동안 혼자서 한글을 공부했다. 닳아빠진 당시의 베트남-한국어 사전과 직접 쓴 한글 단어장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쓴 편지의 내용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문화가 다른 한국생활 초기, 새벽에 일어나 잔일이 많은 즉석두부를 힘들게 만드는 작업에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모두의 후원 덕분이었다.
태용 씨 부부의 즉석두부가게는 보은군내에서 유일하게 베트남 식품류도 취급한다. 국제전화카드를 포함해 ‘호비롱’(부화되기 직전 오리, 닭의 알=곤달걀), 베트남 조미료 등을 판매한다. 이러한 식품류는 모국을 떠나 한국에 시집 온 결혼이주여성들의 향수병을 치유하기도 한다.
끼우 씨는 한국에 시집오기 전 호치민시에 있는 만두 식품회사에서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원래 식품제조와는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남편 태용 씨로부터 4번 교습을 받은 뒤 두부를 직접 만들었고, 두 번 교습 만에 도토리묵을 만들어 냈다. 식품 장인의 소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 비자 만료되는 29일엔 장인, 장모, 아내, 아들과 함께 베트남 행
태용, 끼우 씨 가정은 요즘 베트남 갈 준비로 분주하다. 끼우 씨의 아버지 호 땅리(50), 어머니 장티 김끙(50)씨가 비자가 만료되는 오는 29일에는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끼우 씨의 어머니는 지난 2008년 1월 정완이 출생 때, 아버지는 같은 해 12월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딸의 산후조리와 외손자 뒷바라지를 하며 ‘너무 힘든 탓에 일손이 없는’ 인근 양계장을 다녔다. 닭이 알 낳는 일은 휴일이 없기 때문에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해왔다. 이들은 돈을 모아 베트남 집을 재건축할 푸른 꿈을 갖게 됐다.
끼우 씨의 친정집엔 4명의 남동생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26살의 첫째 동생 외에 나머지 21, 17, 13살의 동생들은 아직 학생들이다.
호치민에서 서남쪽으로 배도 타고 버스도 타고 해서 6-7시간 간다. 그러면 캄보디아와 국경이 닿아있는 끼우 씨의 고향, 안지앙성 자우뭐이가 있다. 이 지역은 수로가 발달해 있어 소형 배가 주요 이동수단이기도 한데 끼우 씨 아버지는 소형 배 제작은 물론 건축 일에도 기술자로 통한다. 목공 일 외에 오이, 토마토, 벼농사를 경작한다.
태용 씨는 한국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장인, 장모와 함께 베트남 처갓집을 일주일정도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여정에는 아직 말다툼 한 번 한적 없는 사랑하는 아내 끼우 씨와 막내아들 정완이가 함께 동행한다.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 가족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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