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청미서림 대표 김기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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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청미서림 대표 김기홍씨
  • 송진선
  • 승인 199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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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심어놓기 40년
올해에는 한달에 최소한 책을 서너권을 읽겠다는 계획을 세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자는 4면이 책으로 가득찬 서방(書房) 갖는 것을 평생 희망으로 삼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김기홍씨(64)는 사방이 책으로 둘러쌓여 있는 서점에서 온종일을 지낸다. 김기홍씨는 보은에 '서점'이란는 말을 처음 만들어놓는 서점의 창시자이다. 그가 아니라면 아마 주민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 아니 서점이라는 말을 훨씬 더 늦게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점을 연지 올해로 꼭 40년. 사람의 나이로 치면 불혹을 맞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민들이 비디오나 TV등 영상매체에 휩쓸리지않고 오히려 더 책을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올해의 바램이다. 괴산군 청천면이 고향이고 청주대 상과 2학년을 중퇴하고 미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둘째형 밑에서 살던 김기홍씨가 물설고 낯선 보은에 등지를 튼 것은 보은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매형 김종록씨의 뒷받침 덕이다.

고향인 청천의 청(靑)자와 잠시 머물렀던 미원의 미(美)자를 따서 형제식당자리에 4평정도ㅇ로 청미서림 문을 열었다. 그때가 25세 된 해이다. 잡지가 주를 이루었고 청소년용인 '학원'과 일반잡지인 아리랑이 한창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당시에 도서문화가 형성되지 않아 2~3일이 지나도 책한권이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잡지 정기구독 회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전등지의 헌책방에서 소설책등을 빌려와 주민들에게 대여해주는 방법으로 서점을 운영했다.

연애소설의 인기가 높아지고 학습참고자가 나오면서 점차 주민들에게 서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또 학교 교사들이 자주 서점을 찾아 청미서림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73년 가게를 구입해 현 위치로 이사했다. 교통이 불편했던 70년대에는 일부러 보은까지 나와서 책을 구입하기가 힘든 학생들을 위해 일부러 김기홍씨는 군내 구석구석을 다니기도 했다. 80년 수해로 지하에 보관하고 있던 두 트럭분량의 책을 모두 버렸을 때도 있었고 책을 양어깨에 매고 청산에서 밤새도록 걸어왔던 일, 외상대금이 많자 부인이 예물반지를 빼주려고 했던일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고진감래끝에 처음 4평에서 지금의 34평의 규모로 발전하고 도서 종류도 다양, 동서양은 물론 옛성현들도 바로 서점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학습참고서 판매량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일반 문학서적도 독자가 확대되고있지만 최근 2년새 컴퓨터관련 서적 판매량이 크게 느는 추세라고 김기홍씨는 설명한다. 마음물고에도 많은 책을 기증했고 수험서를 구해줘 시험에 합격한 한 고객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는 김기홍씨.

40년간 보은에 도서역사를 심어온 김기홍씨는 이제 큰 아들에게 청미서림을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날 참이다. 슬하의 2남1녀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책방에서 뒹굴어 책과 친해질 수 잇는 기회를 갖게 한것이 큰 교육이었다는 김기홍씨는 라이온스, 비비에스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청주상고 보은동문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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