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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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 보은신문
  • 승인 1994.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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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씨<보은 종곡 재부군민회 총무>
싸늘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팔짱을 끼게 된다. 외부로만 향하고 있던 눈이 마음속으로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십이 넘어 육십고개를 향해 치닫는 인생은 새삼스럽게 무엇을 경험할만한 겨를이 없다.

가고 싶거나 그렇지 않거나 인생은 마구 달리고 있다는 바쁜 사실을 누구든 부인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 같이 가을바람이 스산한 날에는 나를 기점으로 연결지워져 있는 주변의 여러문제들을 생각해 보면서 참고 견디며 겸허하고 친절하게 인생을 사는 법을 익히기 위해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도 자주 마련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향수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라서 고향을 떠난 사람만이 비로소 고향을 생각할 수 있다. 너무 교과서적인 말이 될지 몰라도 연고의식(緣故意識)이야말로 한국인의 감정과 지성, 어쩌면 이성(理性)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의식구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의식을 뒤집어 보면 나와 뭔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배타적이고 불안한 심리의 한 단면 일 수 있다. 출신지와 출신학교를 먼저 따지는 것도 이같은 끼리의식과 불신의 한 작품에 다름이 없다.

학연 지연이 얽혀서 만들어진 구조적 연고주의는 안될 일도 되게 하며 될 일도 안되게 하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혼자 산다면 잘잘못이 그리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세련된 기교와 편리제일주의, 탐욕스런 소유욕으로 돈을 모은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들끼리, 권세있는 사람들끼리, 학식있는 사람들끼리, 출신지와 출신학교끼리 서로 사귀고 친절을 베풀고 서로 알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어느 누구도 두려울 것 없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학문이 없는 것을 천시하지는 않으나 그들 뇌리 속에는 무식한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감을 지워버릴 수 없을 만큼 완고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행복한 사람들이 있어서 지식도 권세도부도 연고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이 사실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회적 관계를 망각하기 일쑤다.

세상사에 둔감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자업자득한 결과였음을 그 뉘에게 탓하겠으리오마는천한 사람들이 자기 이웃으로 있으면 마치 자기자신들의 권위에 손상이나 가는 듯이 그들을 피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경멸하는 모순이 국제화로 가는 길에 있다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보장되거나 지켜진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식이 그 정도라면 우리의 개혁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회성 운동으로 그치게 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의식의 개혁이 없다면 선진국 진입은 요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선진국이란 일인당 GNP의 규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부자나라 인가에 못지 않게 의식구조가 더 중요한 결정변수로 작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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