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사료공장 갖춰 생산비 낮출 계획
국내외의 모든 여건이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지금 한창일할 나이인 삼사십대의 열여덟명이 모여 고향을 지키며 경쟁력 갖춘 낙농을 실현시키고 있는 모임이 있다. 올해로 창립 9년째를 맞는 마로낙우회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월평균 우유출하액 6천6백3십여만원. 올해까지 전회원이 투입한 자본금 10억여원. 낙우회의 현재를 말해주는 이두 액수가 대단해 보이지만 처음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1986년 3윌에 회원수 10명으로 창립해 낙농 불모지인 마로면에 '모두 잘사는 낙우회'를 목표로 9년 동안 멈춤없이 추구해 온 마로낙우회는 요즘 주위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한결 같이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성공의 이면에는 어려움이 있었듯 이들의 어려움 또한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극심했다고 한다. 1986년 자본금과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마로농협의 대출자금만으로 출발한 낙우회는 출발 첫해부터 심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3대회장 지낸 이진수씨(44세)는 "그당시 송아지 한 마리 가격이 2백만원이었죠. 그런데 기술이 없다 보니 송아지 분만을 할줄을 몰라 실패를 많이 하고 질병 예방법도 몰라 한 회원당 소 한두마리는 폐사를 했죠. 또 수의사를 불러서 소를 돌봤으니 그 돈만 해도 몇백만원씩은 들어갔죠"라고 초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낙우회원들은 전문가 초청 강연과 농촌지도소에 기술자문을 적극적으로 했다고 한다. 또 개인적으로도 낙농책자를 구입해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고.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리가 잡힐쯤 가장 험난한 파도가 밀려왔다. 1990년 우유파동이었다. 쿼터제를 적용해 집유량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대금도 분유로 주는 실정에서 남아도는 우유를 어쩌지 못해 냇가에 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때의 어려움을 낙우회원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표현한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낙우회 창립 초기부터 실시해 온 것이 기립불능증 등에 걸려 소를 어쩔 수 없이 도축할 때 가격이 1백만원 이하이면 모든 회원들이 돈을 각출해 1백만원을 채워주는 일명 '소보험'이다.
어느 한 회원에게 닦친 어려움을 공동부담을 처리해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회원들의 유대를 느끼게 해준 '소보험'으로 인해 회원 탈퇴는 이제껏 외지로 이사간 두명 밖에 없다고 한다. 우유파동을 이겨낸 1991년에는 송아지 분만에 대한 기술을 완전히 익혔고 낙우회 사무실로 마련했다.
1993년 1억2천만원을 들여 조사료 기계화단지를 도입했다. 현재 회원들이 사육하고 있는 젖소는 총 6백여두라고 한다. 낙우회의 현재가 성공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는 2대 회장 구본영씨(39세)는 "1996년까지는 적자이고 1997년이 되어야 순익분기점을 지나 순수익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낙우회의 경제성에 대해 전망하고 있다.
내년에 회원 공동부담으로 2억여원을 들여 완전배합사료공장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최흥복(41세) 현 회장은 "사료값이 우유 생산비의 50%를 공장을 설립해 자체 생산하면 우유 생산비를 최소한 10%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마로 낙우회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마로농협 지종식 지도부장은 "회원들간의 단합으로 전업농의 기틀을 다지고 있는 마로낙우회는 현재의 농촌에서 모범답안 같은 단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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