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으로 추석 맞는 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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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으로 추석 맞는 종부
  • 송진선
  • 승인 199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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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 전통가옥 지키는 선씨가 종가 맏며느리 김정옥씨
99칸 대가인 외속리면 하개리 선시네 추석은…짙푸른 초록이 살아 있는 소나무 숲에 아늑하게 앉아있는 99칸, 안채 사랑채, 사당채 곳간채가 있고 장독 조차도 담으로 둘러 대문이 있는 12대문집, 일부러 찾아서 돌아다녀야 안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집 크기의 감이 잡히지 않는 선씨네 가옥은 보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들의 추석은 우리와 다른 것일까 울 밖, 숲 밖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이 맞는 추석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조상께 수확의 기쁨을 알리는 바로 그런 '추석'이었다.

사랑채의 작은집 식구들을 포함 23명이 일가를 이루다 분가를 거듭하면서 지금은 안채의 집안 어른이 어산씨를 포함 종손인 선민혁씨 가족 6명과 사랑채의 둘째의 선사혁 가족 3명 모두 9명이 1만여평에 이르는 99칸 집에 살고 있다.

고즈넉 하기 조차 한 집안에는 배나무, 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차례상에 올릴 수 있는 과일이 탐스럽게 열려 추석 준비로 바쁜 선씨네 가족들을 흡족하게 해준다. 외아들로 자라 형제가 많은 집으로 시집 보내겠다고 말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스물다섯의 나이에 아흔아홉칸 대가집 맏며느리로 시집 온 김정옥씨(42세)의 추석맞이는 한달 전부터 시작된다.

결이 고운 한지를 사서 문을 바른 다음 볕에 잘 말려달고 한달에 한 번꼴로 제사가 있어 늘 정갈하게 치워놓고 있는 사당도 조상의 위패를 깨끗하게 닦는거며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햇볕에 잘 말려 윤이 나는 놋제기도 다시 닦아 윤을 낸다.

그리고 시할머니 유평희씨 밑에서 배운 집안 대대로 이어져 오고있는 음식을 한가지 한가지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 거기에는 옛 전통 그대로 누룩과 솔잎을 넣은 빚은 곡주와 약과, 강정, 다식, 정과산자 등 한과와 육포 산적 신선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수가 종부인 김정옥씨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것들이다.

좀더 편하게 살자고 약고 산자는 물론 추석 음식의 꽃인 송편까지 사서 차례를 지내고 있는 요즘의 세태에서 볼 때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그녀의 고집이 오히려 그녀만이라도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다행스런 마음이 들었다.

모든 음식을 준비한 다음 가장 마지막 추석 전날 밤에 남자 여자 구분하지 않고 송편 반죽그릇에 빙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못해도 쌀 5되 분량을 곱게 빻아 익반죽하고 고물은 깨와 녹두를 게피낸 것을 이용 송편을 만들어 솔잎을 켜켜로 깐 시루에 김을 푹내서 쪄낸다.

예부터 남자역할 여자역할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모든 일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세월도 많이 흘렀지만 시작은 아버지부터 종가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종부 김씨의 힘든일을 안쓰러워 하며 송편 빚는 것을 도와주고서 부터다.

그래서 송편의 모양도 하나 같지 않고 김씨가 만든 것, 시작은아버지, 동서들, 시어머니, 아이들까지 나서서 만들기 때문에 송편을 다 빚고 나서 각자가 빚은 송편의 작품을 보고 한바탕 웃음꽃이 피기도 한다.

그러면 채 보름달이 되지 못한 달도 곤한 잠에 빠져 한가위를 맞는다. 이렇게 종부가 한달 전부터 준비를 거듭하며 그녀의 손끝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으로 선씨네는 고조 내외분부터 큰아버지까지 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에서 70여명의 제주가 3차례에 걸쳐 추석절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한 마을에 이웃해 있는 작은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아흔아흔칸 종가에 와서 다시 차례를 다지내고 나면 해는 벌써 중천까지 떠오른다. 그렇게 차례를 지낸 선씨 가족들은 깨끗하게 가꿔져 있는 조상의 묘를 성묘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차례음식을 먹으며 가풍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나름대로 반성을 하며 가사를 설계한다.

그 차례를 지내기 위해 추석 전날 즉 작은 추석날이면 서울 등 객지에 나가서 살고 있는 선씨네 가족들은 모두 하개리 아흔아홉칸 집으로 온다. 그들은 현재 집안의 가장 어른인 김씨의 시어머니인 어산씨(70세)에게 절을 하고 그 다음 어른에게 절을 하고 도 절하고 결국은 동서끼리도 작은 동서가 손윗동서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예를 갖추고 있다.

아침에 절을 했어도 오후에 보면 다시 방에 들어와 절을 해야 한다. 밖에서 고개만 숙이는 인사만으로는 예의를 갖추기 못한 것으로 여겨 반드시 바에 들어와 정중하게 절을 해야만 한다. 선씨네의 가풍인 것이다.

그래서 동서들에게 절은 받는 종부 김정옥씨는 늘 어깨가 무겁다. 적어도 손아래 동서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자리에 있었던 18년 동안 그녀가 느끼고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은 어느 환경에서나 내 위치에서 내가 맡은 소임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

또, 항상 베풀어야 한다라는 것인데 동서들도 따라 주고 있고 잘 도와줘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많은 도움을 줘 뭐 좀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생활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보고 따라해 남들이 곧잘 아이들이 예의가 바르다고 칭찬하며 김정옥씨는 내심 기쁘고 끝까지 잘자라 주길 기원할 따름이다.

이렇게 조상을 잘 섬기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가풍이 살아있는 아흔아홉칸의 선씨네는 이웃들과도 비교적 떨어져 있어서인지 놀러오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있다. 김씨는 정성이 담긴 맛깔스런 추석음식을 마련해 놓고 동네 아주머니들을 집안으로 청하기도 한다.

복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일 쇠어 보세/ 신도주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 갈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영이라/ 초록장옷 반물치마 장속하고 다시보니/여름 지어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철따라 변하는 농삿일과 때 맞춰 먹는 음식 등 8월 한가위 대목처럼 조상께 수확의 기쁨을 알리는 추석 차례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따로 올벼를 심던 옛어른들의 정성을 따르진 못하더라도 선씨네 종부인 김정옥씨는 올해도 농사를 잘 짓게 해주고 가정이 평화로운 것은 모두 조상의 음덕이라고 믿는다.

그런 기쁜 마음에 내일을 맞는 선씨네 종부 김정옥씨의 마음엔 벌써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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