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음식업중앙회 과천시 지부장 이철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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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음식업중앙회 과천시 지부장 이철희씨
  • 보은신문
  • 승인 199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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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농산물 애용 앞장, 항상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하는 삶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고향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고향 보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애를 쓰는 대한음식업중앙회 과천시 지부장 이철희씨(53). "고향을 떠나 생활한지가 30여년이 훨씬 넘었지만 보은에 내려가 들녘을 바라보면 농작물 하나 하나에, 또 그것을 재배하는 고향사람에게 끈끈한 애착을 느낍니다"

올해 1월24일에 마로농협과 과천음식업지부가 자매결연을 맺은 뒤에는 농작물 한 가지라고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고 이철희씨는 말한다. "외국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우리나라의 농업이 의기에 처해있다는 생각에 이왕이면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께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전국에서는 최초로 음식업지부와 농협간의 직거래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향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식당 손님에게 내놓았을 때 손님들의 호응이 높아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서울대공원 안에서 "햇님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철희씨는 마로 산(産) 쌀과 건고추 등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쌀과 건고추 등에 치중한 직거래였지만 앞으로는 미로에서 생산되는 한우를 소비시킬 생각입니다. 한우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과천시 음식업지부에 소속된 380여 업소에 마로 농산물을 공급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는 이철희 지부장은 미로면 오천리 출신이다. 삼승초등학교와 보덕중학교를 마친 뒤 현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가 한영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를 한다. 군대에서 재대한 뒤에도 일년간 가방제조업을 하던 이철희씨는 1969년에 서울 세운상가에서 전자대리점을 일년간 운영했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

1970년도에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을 때 고속터미널에 매점을 운영한 이후 7년간 매점에서 큰 이익을 남겼다. 1975년부터는 매점과 별도로 수원에 경동화학이라는 제조업을 럭키의 기술 지원으로 시작했으나 1979년 부도가 나고 만다. 1982년부터 음식업에 눈을 돌린 이철희씨는 1984년에 과천시 과천동에 4650평 규모의 '동원가든'을 열고 본격적으로 음식업에 뛰어들었다.

1991년에는 서울대공원 내에 '햇님의 집'을 250평 규모로 열었다. 성수기에는 하루에 햇님의 집을 거쳐가는 손님만 수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음식업에서 탄탄한 자리를 굳힌 이철희씨는 사업뿐만 아니라 사회봉사에서 열심이어서 지난 6월30일에는 과천라이온스 회장에 취임했다.

뿐만 아니라 전에는 자율방범협의회장도 역임했고 현재도 과천경찰서 선진실서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자신의 봉사활동을 정치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이철희씨는 말한다. "어느 분야이든 앞서가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항상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하는 이철희씨는 식당 내에서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을 시발시킨 장본인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부터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 시작한 이철희씨의 생각이 보사부에서 받아들여져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한다. 음식업지부와 마로농협간의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상주연락사무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철희씨는 "마로농협과 음식업지부 간에 상주연락사무소를 두려고 장소를 물색 중인데 쌀과 건고추 만으로 타산이 맞지 않아 한우와 잡곡 등을 동시에 취급해야 합니다.

연락사무소를 둘 수 있도록 쌍방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직거래 품목의 확대가 필요한 점을 설명했다. 보은에 부모님의 선영이 있고 큰 형님 이창희씨(63 판동국교 교장)가 살고 있다는 이철희씨는 부인 김행자씨(51세) 사이에1남3녀를 두고 과천시 부림동에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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