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 낙우회장 최흥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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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 낙우회장 최흥복씨
  • 보은신문
  • 승인 199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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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농의 꿈은 부지런함에서, 젖소 농장의 체계회로 UR 극복 실천
"우루과이라운드(UR)를 극복하는 방법은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니다" 약간 엉뚱하게 들지도 모르지만 마로 낙우회장 최홍복씨(42세)가 어려운 농촌현실의 타개책으로 힘주어 주장하는 내용이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최씨 혼자서 감당하는 노동량은 웬만한 사람이면 고개를 내젓고 말 정도이다.

젖소 57두와 전답 일만차선여평을 혼자서 감당할 뿐만 아니라 낙우회 일도 매우 적극적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귀끔한다. 스스로를 '독종'이라고 말하며 최씨도 웃는다. "시설 투자를 늘리면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 감가상각비가 높아지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편한 시설은 곧 게으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앞뒤 안가리고 억척스로운 것 같지만 최씨의 부지런함에는 '계획'과 '합리'가 혼합되어 있다.

시설 투자를 더 늘리지 않는 이유를 자기관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최씨가 몇 번이나 강조하는 '부지런함'은 마흔두해라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몸으로 깨달은 소중한 교훈 같다. 그는 마로면 관기리에서 가난한 집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가난함을 정도는 이웃들의 이목이 부끄러워 물숱에 불이 때 밥 짓는 것처럼 연기를 피워 올릴 정도였다고 한다.

학력도 국민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국교 졸업 후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마로면사무소 기능직에 취업을 해서 같이 근무하던 김점순씨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 뒤 79년부터 80년까지 1년8개월 동안 사우디에서 일을 해 번 돈으로 집안 빚을 청산하고 나니 소 한 마리 값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서울에서 누나와 함께 한 식당을 1년간 운영하다가 82년도에 마로면에 내려온다. 그 해부터 최씨는 소와 인연을 맺는다. 처음에는 한우비육부터 시작했다가 87년부터 젖소로 방향을 바꾼다. 그 뒤 지금까지 젖소를 길러오고 있다. "한 가지 작물이나 가축에 전문가가 되고 기업화가 되어야 합니다" 소와 13년 동안 함께 산 최씨의 지론이다.

젖소 농장은 '직장'이고 젖소 키우는 일은 자신의 '직업'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직업에 철저하기 위해 최씨는 젖소에 관한 각종 정보나 지식을 언론매체나 책으로, 축적하고 있다고 한다. 주위에서 성공한 사례로 꼽혀 축산과 고등학생들에게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최씨는 올해부터 다른농가와는 달리 젖소농장의 체계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즉 지금까지의 단순 우유 생산에서 벗어나 농장에서 태어나는 모든 젖소를 자체 소화시킨다는 것이다, 암송아지가 태어나면 길러서 우유생산을 하고 숫송아지는 비육을 하여 농협으로 계통출하를 한다는 계획이다.

"농장 내부적으로 체계화를 하면 경쟁력이 생겨 웬만한 가격인하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일배여두 이상의 젖소를 사육할 계획을 갖고 있는 최씨는 자신의 오랜 경험이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고 말한다. 즉 경험이 없는 젖소 사육 초보자들은 어린 송아지 초유떼기와 분유떼기에 익숙지 않아 젖소비육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앞날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며 살아가는 최흥복씨는 김점순씨와의 사이에 은경양과 신규군을 두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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