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이 낳은 오장환 시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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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이 낳은 오장환 시인을 아십니까
  • 송진선
  • 승인 199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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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5일은 회북에서 오장환 시인이 태어난날 시비건립 무학제 등 우리모두 관심 가져야
5월15일은 보은이 낳은 시인 오장환씨가 태어난지 76년 되는 해이다. 해금된지 6년 정도가 된 지금 과연 지역주민들에게 오장환시인이 고향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또한 문학단체나 문학회에서는 오장환시인에 대한 고향선배 시인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있었는가 의문이다.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옥천의 월북시인인 정지용시인의 경우 시비건립은 물론 그를 기리는 문학축제가 매년 열려 전국의 문학도들이 참가 실력을 겨루고 있는 현실에 비해 볼 때 보은이 낳은 오장환시인과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출향인인 서강대 김학동교수가 오장환에 대해 연구한 것을 제외하곤 보은인들의 무관심 속에 개발되지 않은 원시림처럼 시인 오장환은 연구가 불충분한 상태로 보존(?) 되어 있는 상태다.

이는 지역주민들이 정말 부끄럽게 생각해야 될 노릇이나 누구하나 관심을 표명하는 이가 없는 아쉬운 실정이다. 시인 오장환은 1918년 5월15일 보은군 회북면(당시 회인면) 중앙리에서 오학근씨와 한학수씨의 4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학교 입학이 늦었던 것이 보통이었던 당시에 비해 오장환시인은 비교적 이르다고 할 수 있는 6살되던 해인 1924년 회인 공립 보통학교를 입학, 재학중에 경기도 안성으로 전학한 때가 1927년이었다.

31년 휘문보통학교에 입학했으니 사실 그가 고향 보은에서 지낸 것은 불과 얼마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시에는 회인골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이 내표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에 대한 소질이 있었던지 16살에 이미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했고, 다음 해에 연작시 '카메라·룸'도 발표했으며 3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지산중학교에 전입 수학했는데 그곳에서 시민부락과 낭만지 동인으로 활동하며 서정주, 김동리, 함영주 등과 함께 시작활동을 벌이고 시적 영역을 넓였다.

1937년에는 일본 명치대 문과에 입학 자오선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그해 8월에는 첫 시집인 '성벽'을 간행했다. 또한 1939년에는 자신이 경영하는 낭만서방에서 두 번째 시집 '천사'를 출발했고 1945년 8·15광복을 계기로 시집 '병든 서울'시편을 저작, 해방 후 오장환이 좌익계 문예운동에 가담한 것은 1946년 제1회 전국 문학가대회에 참석하고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며서 부터이다.

1946년 5월 '에세-닌 시집'을 펴냈으며 7월에는 세 번째 시집은 '병든 서울'을 발간하는 등 왕성한 시작활동을 벌였다. 1947년 6월에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을 강행하고 1948년 정부수립 이전 국토분단을 전후해서 좌우 이념의 심한 대립양상을 보였던 때 혼란을 겪던 시인 오장환은 월북 잠적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장환이 월북하기 전까지 대단한 문학 열정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월북 후에는 어떤 내용의 무학을 노래했는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잡히는 것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념대립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남북되었거나 월북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미지으 LTL인 오장환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1988년 6월 납·월북작가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로 오장환 작품 간행 및 연구가 허용되었다. 이에 따라 보은종곡 출신인 김학동 서강대 국문과 교수가 보은이 낳은 시인 오장환에 대해 연구를 한 바 있고 89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오장환 전집 1, 2를 출간한 바도 있다. 한 때 시인 오장환이 보은출신이라는 것을 안 주민들은 대단한 관심과 자긍심을 갖기도 했으나 그 후로 잠잠해진 것은 옥천출신 월북시인 정지용에게 쏟는 관심과는 매우 큰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제라도 보은은, 보은 주민들은, 보은 문화단체에서는, 보은 문학회원들은 이미 시인 오장환에 대한 연구서가 발간된 것을 기초로 해서 보은이 낳은 오장환에서 출발, 한국의 훌륭한 시인 오장환을 널리 알리고 그의 문학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주민들은 그를 기리고 추모하고 그의 작품을 노래하는 문학제를 개최하거나 시비라도 건립하는 기초적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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