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으로 보람찬 이십년
지난 간 세월의 족적으로 하나둘 생겨나던 흰머리가 어느새 반을 넘게 차지하고 눈썹마저도 반백인 할아버지. 그러나 팔순의 고개 바라보이는 일흔 아홉 노인의 모습으로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생기 있는 눈과 목소리가 대한노인회 군 지부장 배동연옹의 생활에 대한 적극성을 짐작케 한다. "기운이 쇠하고 경제적 능력이 떨어질수록 노인들 스스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 사회 생활할 때의 위치가 높고 낮음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평등정신으로 서로를 위하면 그것 자체로도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노인들이 나이와 경험이 적은 후배들에게 염려와 교훈을 앞세우는데 비해 배동연옹은 노인들 자신의 개선할 점을 먼저 내보인다.
가난과 부귀를 모두 경험해서 일까. 배옹은 힘주어 평등정신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보은군과 경계지역인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에서 가진 재산이라고는 논 세마지기가 전부인 가난한 농부 집안의 일곱 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배옹은 불과 17세에 자신의 앞길을 동생들 때문에 바꿔 버린다.
자신은 한문수학과 초등학교 졸업으로 족한 채 돈을 벌어 동생들 학비를 대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예전에는 동생들에게, 지금은 손자들에게 형제일신(兄弟一身), 즉 형제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몸이라는 점을 자주 이야기해 줍니다."이웃사람에게 빌린 돈으로 발동기를 구입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정미해 주는 것이 처음 시작한 사업이었다, 거기에 물레방아까지 구입했는데 운도 따라서 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밤을 낮 삼아 일을 했습니다. 많은 날을 거의 잠도 자지 못하고 일했습니다" 그래서 스물여덟에는 상주 운흥리에 있는 술도가를 인수해 지금까지도 술과 인연을 맺고 잇는 양조사업을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6.25전쟁 때는 중국에서 들어오던 경면주사라는 약품을 독점해 전국으로 공급해서 많은 수입을 올렸고 그후 32세에 보은주조회사와 죽전양종장을 인수했다.
배동연옹은 1972년부터 문화원장을 시작으로 도정자문위원, 소방대장을 거쳐 지금의 노인회장까지 23년간 사회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13년째 맡고 잇는 노인회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군에서 나오는 보조비로는 노인정 운영비도 보충이 안돼요. 그래서 노인정마다 폐품수집을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형편이어서 회원들 회비로 충당을 하고 있습니다." 증평 같은 경우는 노인회 군 지부에 유료주차장 설치해 노인회에서 운영해 자립금을 만들고 있는데 보은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며 "군민 열 사람 중에 한 명은 노인회 회원입니다. 회원은 갈수록 늘어나는 데 자립기반이 없어 그것이 제일 큰 걱정입니다." 배동연옹은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노인들 일거리를 찾아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부인 이숙자씨(74)와 아들 내외와 함께 교사리에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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