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태워 주위를 밝게 하는 인생
순애보니 효부인 장안 여인이니 하는 어떤 함축된 단어로는 황혜숙(39세 보은 교사2구)을 다 얘기하지 못한다. 황혜숙씨. 그는 지금 불구의 남편과(한쪽다리 절단) 93세된 시할머니 그리고 67세된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고 이들의 생활과 세 아이들의 학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인 가장이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남편이 불구가 될 수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 시어른들도 병환으로 몸져누울 수도 있다. 하지만 황혜숙씨가 겪어 가는 이 힘겨운 생활은 세상을 살다가 어쩌다 닥친 불행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주 뻔히 알면서도 선택한 인생이라서 더 애뜻하고 감명 깊다.
황씨는 세상물정 모르는 꽃다운 나이 21살 되던 해에 한 동네 살던 남편 이광희씨(국가유공자, 45세)가 군입대후 폭탄 폭발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귀대했을 때 이씨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신랑감이 불구인 것 외에도 시아버지 되는 고 이대성씨가 당시 장사에 실패하고 풍으로 몸져누워 있는 데다 삯월세 좁은 집에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당시 75세 된 시할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힘겨운 가정이었다.
그런데도 이씨와의 결혼을 결심한 것은 황혜숙씨의 "비록 어렵고 불행한 집안이지만 내 한몸으로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보람된 삶이 아니겠냐"는 마음 하나만으로 결혼에 이른 것. 사실, 이 결혼은 시어머니인 문방자씨(67)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주위에서도 "결혼할 때 마음처러 그 어려움을 딛고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가질 정도로 결혼부터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당시 시어머니인 문씨가 "우리 집은 가진 재산 하나 없이 입에 풀칠할 걱정까지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인데다 아들은 불구인데 정말 살 수 있겠느냐?" "아들의 손발이 되어 계속 같이 살아 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아들 인생을 더욱 더 망치게 되는 것이다"며 짐짓 만류도 해봤지만 황씨의 친정 어머니까지 찾아와 혼사를 약조해 결혼에 이른 것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18년을 살아오는 동안 처음과 똑같은 한마음으로 10년 동안 누워 있다가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병수발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노 할머니의 뒤치다꺼리, 불구 남편 뒷수발 등을 해와 주위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한 것은 물론 시어머니인 문씨도 "아무리 며느리지만 너무 잘하고 고생을 많이 시키니까 감격하고 고마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찍어낸다.
삼밭이나 사과 꽃따기 고추밭 등 남의 집일 품팔이나 수출품제조 등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꾸려 나가고 있는데 황씨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어른을 공경하고 남편과 금실을 자랑하며 살아온 것이 때문인지 재은. 지혜, 재옥 아이들도 할머니와 노 할머니를 끔찍이 생각하고 부모한테도 잘 한다고 자랑에 침이 마를 정도.
비록 어렵고 고통스로운 가시밭길 인생임을 뻔히 알면서도 나한의 희생으로 도움을 주며 보람 있게 살겠다고 선택한 황씨의 인생. 이런 남다른 인생이기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황씨가 요즈음 시부모 모시기 싫어 혼사까지 깨지고 가정불화가 찾다 는 젊은 세대들의 의식에 비추어 볼 때나를 희생해 불행을 따뜻이 감싸줄 수 있는 촛불 같은 진솔한 삶은 지켜 보는 이들을 자못 숙연하게까지 한다. 이광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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