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교포 김창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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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교포 김창복씨
  • 보은신문
  • 승인 1994.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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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따뜻한 고국의 품』
흘리는 땀방울만큼 통장의 금액도 많아진다는 마음 때문인지 김창복씨(45. 일곡의료 근무)가 보일러를 점검하는 발길은 분주하기만 하다. 중국 연변교포인 김창복씨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일곡의료(심승 우진, 의료용 고무장갑 생산업체) 대표 구금회씨의 부인 안순옥씨와 외사촌간으로 지난 92년 친지방문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일곡의료에 취업해 부인 유남순씨(40)는 식당 일을, 여동생 김영희씨(29)는 공장 일을, 김씨도 보일러 일을 하고 있다.

천지 방문 차 한국을 방문한 것은 2년 동안 밖에 체류할 수 없어 오는 5월에는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돌아갈 배표까지 준비해 둔 상황이다. 연변교포 2세인 김창복씨는 부친 고 김용기씨와 모친 안영식씨(76)가 1937년 간도성(길림성 부근)으로 남의 집일을 하기 위해 건너갔다가 그대로 눌러 살게 되면서 2세,3세까지 중국 국적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지난 75년 어머니 안씨가 하나뿐인 오빠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무작정 편지를 냈다가 이것이 연결되어 천지방문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를 비롯하여 4남2녀의 형제 중 5남매가 모두 한국을 방문했다. 부인과 합친 한달 월급은 90여 만원. 이중 10만원만 생활비로 쓰고 모두 저축해 지금까지 2천여 만원을 모은 김창복씨 부부는 그 중 7백 만원을 들여 중국 연변에 11평 짜리 APT를 구입해 놓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과는 화폐가치가 틀려 한국에서 번 돈은 상당한 액수에 해당되고 중국에 돌아가도 중국공인자격증이 있어 재취업이 가능하며 퇴직 후에도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상류층 생활수준은 된다고 한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언어와 감정, 사상이 통하는 고국 땅에 왔다는 기쁜 마음과 중국의 조선족 중 20∼30%만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혜택을 입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됐다는 것으로 마음이 뿌듯했다"는 김창복씨는 국적만 있다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92년 7월부터 친지방문을 통제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도 못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화폐가치가 틀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몇 년간만 돈을 벌면 돌아가서는 생활형편이 훨씬 낳아질 수 있기 때문에 외국 근로자들을 고용하느니 기왕이면 한 민족의 중국연변 교포들이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방안을 국가적으로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고 바램을 말한다.

한국은 자연환경이 좋고, 특히 속리산, 지리산을 가보았는데 깨끗한 관광지의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고. "한국의 친구들이 모두 친절하고 잘 해주지만 간혹 외래어를 많이 써서 못 알아듣는 말도 많다"며 그런 점에서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의 생활수준과 사상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칠순이 넘은 노모와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 초등학교 4학년인 딸 등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오는 5월15일 김창복씨 부부와 여동생 김영희는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할 것이고 또 돌아가서도 고국과 보은을 잊지 않을 것이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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