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한우 사육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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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한우 사육할겁니다” 
  • 송진선
  • 승인 2001.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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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축산인으로 정착 임성호(보은 중초)씨
농사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이 농촌에 귀향해 정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흔히 하다 하다 안되면 농사나 짓지 뭐 하고 농사를 쉽게 생각하고 있으나 결코 만만치가 않다.

보은읍 중초리에서 한우를 기르고 있는 임성호씨는 농촌에서 한우를 사육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택해 이제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3사관 학교 출신으로 15사단 4년, 57사단 3년간 군 복무 중 96년 12월 제대해 97년 1월부터 6월까지 군인 공제회에 입사했다.

그러다 고향인 중초리로 내려와 국방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던 중 98년 3월 아는 형님을 따라 우연찮게 보은 우시장에 들렀다. 돈 1000원 가지고 흥정하는 축산 농민들과 소 장사들을 보고 흥미를 느껴 5월경 한 번 한우 사육을 해보겠다고 맘먹을 먹게 되었다.

아버지 임헌규(69)씨와 어머니 오복선(65)씨의 3남2녀 중 셋째인 임성호씨는 농사는 무슨 농사냐며 부모님 등의 거센 만류가 있었으나 가지고 있던 돈과 귀농자 창업 자금을 받아 처음으로 24마리를 사들였다. 처음으로 내 소를 가져본 것이다.

우사가 없었던 임씨는 보은읍 용암리에 있는 것을 빌려 한우 사육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으니 여간 힘이 들었겠는가. 송아지는 설사나 호흡기 질환에 늦게 대처하면 죽는데 잘모르니까 손을 늦게 써서 4, 5마리는 죽였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쌍둥이를 가졌는지도 몰라 한 마리는 낳다가 죽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뱃속에서 다른 한 마리가 죽고 그로 인해 큰 소도 죽어 버렸다.

너무 속상하고 애처로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는 임씨는 그래서 기술을 익히려고 교육이 있으면 쫓아 다니고 전문 서적도 구입해서 보고 수의사들과도 친분을 가져 질병에 대해 상담도 하는 등 전문 축산인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소에게 관심을 갖고 대할수록 살이 찌고 또 육질이 좋아진다는 말에 쓰다듬기를 얼마나 했는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정을 기울여 사육해 좋은 소를 만들고 또 그동안 소 값이 계속 좋았기 때문에 이득을 많이 남기고 팔 수가 있었다. 통장에는 돈이 채곡채곡 쌓여 갔다. 그 다음에는 28마리를 구입해 계산상의 이득이 나오면 이를 다시 팔고 용암리에서 중초리 형님 우사로 이사를 하는 등 한우 사업에 재미를 붙여 나갔다.

임성호씨는 “육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는 한우농가가 많아 자신이 이들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며 “이제 4년째이기 때문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 조금 아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우농가는 대부분 중송아지를 비육해서 파는 형태였으나 앞으로는 송아지를 생산하는 것에서부터 비육해 파는 것까지 전 과정이 이뤄져야 ”다며 “외국산 소가 들어와도 우리 입 맛에는 우리 것이 맞기 때문에 처음 외국산 소가 들어오면 호기심 때문에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도 있으나 어느 시가가 되면 다시 우리 한우를 찾을 것이라며 한우는 전망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송아지 값이 너무 비싸 입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적정 두수 확보가 제일 시급한 현안이라고 꼽은 임성호씨는 98년 5월 대전에 사는 유영숙씨를 만나 결혼해 지금은 3살짜리 딸과 올해 9월초에 둘째 아이를 낳을 예정이다. 중초초교와 보은중학교, 보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군 사관학교에 진학, 군인의 길을 걷다가 한우농가로 일대 변신한 임성호씨. 성공한 귀농인으로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여기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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