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속 사내리 민판동 최인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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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속 사내리 민판동 최인수씨
  • 송진선
  • 승인 199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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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가득 복이 담긴 복조리" 전통 복조리 제작의 맥을 잇는 삶
설날을 앞돈 시기에 등에 잔뜩 복조리를 짊어진 젊은이들이 마을을 누비며 집집마다 복조리를 팔던 모습은 20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복조리 2개를 교차해서 묶어 현관이나 방문 위에 매달아 놓으면 1년 내내 집안이 편안하고 복이 들어온다는 믿음 때문에 집마다 복조리를 걸어두는 풍습이 성행했지만 이젠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수공예품인 대나무 조리는 발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귀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한때 복조리로 명성을 날렸던 내속리면 민판동에서는 겨울이면 전 농가의 집안 식구들이 모두 동원돼 복조리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이 모습을 구경하기 힘들다 요즘 최인수씨(60)는 청주의 대학생들이 주문한 복조리를 만드느라 손놀림이 분주하다. 속리산에서 잘 자란 산 대나무를 채취해 햇볕에 잘 말렸다가 다시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후 건조시켜 매끈하게 조리를 만들어 놓는다. 그가 결 곱고 매끈한 복조리를 만든 것은 60년대부터.

외속리면 오창리에서 얼마 안 되는 농토로 농사를 짓다가 이곳 사내리로 이사해 당시 복조리를 만들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성행하자, 이 집 저 집 놀러 다니며 어깨너머 배운 것이 지금의 솜씨로 발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해 겨울동안 1백 개를 만드는 것도 힘이 들었는데 점차 솜씨가 붙어 4∼5천 개는 너끈히 만들 정도로 노련해졌다.

손바닥 살이 다 터져 피가 스며 나오는 것이 보통이고 대나무에 베는 것도 비일비재했지만 아물 세도 없이 조리를 묶어 굳은살이 박혔고 지금도 손바닥이 딱딱해져 가시에 찔려도 느낌이 없을 정도. 50개정도 만들면 쌀 한말 가격을 받아 살림에 큰 보탬은 안되었지만 할 일 없이 놀고 지내는 겨울에 열심히만 하면 쌀 몇 가마 값 정도는 벌 수 있어 남보다 몇 개라도 더 만들기 위해 조리대를 1년 내내 채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플라스틱 제품이 보급되자 복조리 수공예는 금방 사양길을 걷게 되었고 요즘은 주문이 거의 없을 정도에까지 이르러 복조리는 점차 잊혀져 가는 풍물이 된 상태다. 그나마 올해는 개당 1천원당 4백 개의 주문을 받아 소득을 올리는 최인수씨는 겨우 복조리의 명맥만 유지하는 형편인데도 매년 이런 수준이나마 유지된다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어려서부터 지게, 삼태기, 광주리, 쟁기(흙징이) 등도 직접 만들어 썼을 정도로 손재주가 훌륭했다는 최인수씨. 그는 전통 풍물이 쇠퇴하고 있는 요즘의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복조리를 단순히 돌을 골라내는 기구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선물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안될 것 아니냐"고 애석해 한다.

농사도 짓고 송이도 채취해 생업을 잇는 최인수씨는 부인 신복남씨(56)와의 사이에 1남녀를 두고 있으며 오랫동안 주문 받은 복조리를 제때 공급 할 수 있도록 한창 마무리 손질을 하며 새로 만든 복조리를 방문 위에 건다. 복조리 하나 가득 복이 담겨지길 기원하면서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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