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전령사, 오지마을 주민들의 배려 깊은 추구
전화 대신 편지로 소식을 전할 수 있던 시절 자신에게 보내오는 편지를 받기 위해 하루종일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던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소식 보따리를 한아름 안고 오는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루 빠짐없이 소식을 담은 우편가방을 메고 마을을 누비는 회남 우체국 집배원 양용우씨(41. 회남 거교)는 그래서 회남 주민들에게 소식을 가져다 주는 전령사일 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품까지도 구입 해다 주는 친절한 집배원이다. 우편물 배달은 나가기 전인 9시 무렵부터 감기 약을 사다 달라거나 미원을 사다 달라거나 손자가 보고싶어 서울의 아들네 집에 가니까 우편물 좀 잘 보관해 달라는 등의 주문 전화를 받는 것으로 양용 우씨의 우편집배원으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것은 편지는 없어도 신문이 있기 때문에 회남면 전 마을을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르게 마련이고, 우편물이 없어도 노인네만 사는 집이 일부러 찾아가 어디 아픈데 없느냐고 문안인사라도 하는 등 도회지로 나간 자식노릇을 대신하는 양용 우씨의 세심한 배려가 그를 신임하게 하고 그래서 주민들의 요청도 자꾸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친절하고 근면 성실하게 생활하는 것이 집배원으로서의 도리이고, 주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는 전령사의 역할에 만족하다"는 양용 우씨. 그가 우편가방을 메게 된 것은 지난 80년 6월경. 회남면에서 나고 자란 논밭이 수몰되기 전만 해도 논 1천5백 평, 밭2천 평을 경작하며 농촌에서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해 부유한 편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꾸려 왔다.
그런 던 중 80년 대청댐 건설로 생활터전이었던 논밭이 물에 잠기고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 밖에 없던 양씨가 방황하고 있을 때 회남 우체국에서 집배원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력서를 낸 것이 다행히도 합격해 집배원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오지에 속하는 회남면은 특히 눈이나 비가 올 때는 오토바이 통행도 어려운 곳이 있어 걸어서 일일이 배달해야 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재지까지 오기가 불편한 주민들은 양씨에게 생활 필수품은 물론 예금도 맡기고 있어 어떤 날은 배달해야 될 우편물보다는 주민들이 사다달라는 물품이 더 많을 때도 있다고 한다. "농번기 때는 농협에서 농약이나 비료까지 가져다 달라는 주민들도 있어요. 힘은 들지만 어렵게 생활하는 주민들을 돕고 그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는 당연한 도리죠"라고 겸손해 하면서 "그래서 가끔씩 전화를 주거나 일부러 우체국까지 양말을 사들고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주민들을 보면 보람도 느끼고 근무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친절생활을 14년이나 해온 양용 우씨는 그동안 우량 종사 원장 상은 물론 보험모집 유공자로 3번이나 수상하는 등 성실성을 인정받고 있고 회남면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집안에서는 연로한 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피는 효자로, 부인 안경순씨와 1남3녀의 자녀들에게도 효의 모범을 보이는 가장으로, 주민들에게는 친절한 집배원으로 인정받으며, 양용 우씨 희망을 가득 담은 우편가방을 메고 오늘도 인적도 드문 오지마을을 쉬 없이 누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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