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주변 성역화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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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주변 성역화 개발
  • 보은신문
  • 승인 199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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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의 속리산개발 취지-
올해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많은 관광객이 속리산을 찾을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주지 고정일)는 전국 3대 사찰중인 하나로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3년)에 의신조사가 창간했고 진표율사가 중창한 사찰이다. 관광객들은 국보 제5회인 쌍사자석등, 국보 제58호 팔상전, 보물 제64호인 석연지, 보물 제 15호인 사천왕석등, 그리고 유형문화재 제39호인 희견보살상과 석조, 석옹, 석등 등 많은 유물이 보유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법주사를 방문하기 위해 속리산으로 발길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때에 법주사에서는 속리산 법주사를 비롯한 일원을 민족의 휴식과 함께 역사적 문화와 얼을 찾는 곳으로 개발하는 개발 취지문을 밝혀 속리산으로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즉, 오랜 역사 속에 신비와 신념이 감추어진 법주사의 터전은 민족의 역사적 신념과 의식에서 보존되고 개발도 착안되어야 한다는 법주사의 개발취지는 그동안 위락, 편의시설 확충 등 레저 개발만 서둘러온 속리산 개발안과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법주사는 당초 개발 안을 전면 백지화하는 정신에서 다시 착안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위락과 편의시설만 제공하는 레저 개발 적으로만 속리산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유산과 역사적 유물을 그대로 보존시키고, 불교회관 등을 만들어 속리산 법주사를 비롯한 모든 시설을 역사의 교육장으로 개발하여야 한다고 법주사는 밝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의 버스주차장 아래로 위탁 영업 및 상가시설은 옮겨야 하고 지금 주차장을 위로는 교육장으로 성역화해야 한다는 것. 이와 같이 역사의 장으로 법주사를 개발하는 안과 위락편의를 제공하는 레지 시설을 병행 추진한다면 속리산의 역사의 교육장과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즉 정신과 물질의 개발을 함께 개발하는 것과 같다는 것.

이처럼 법주사는 밝히는 속리산개발 취지문은 레저 휴식과 함께 역사적 문화와 넋을 찾는 쪽으로 개발한다는 법주사의 의도에 군 당국이나 주민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법주사가 밝히는 속리산 개발 취지문은 레저 휴식과 함께 역사적 문화와 넋을 찾는 쪽으로 개발한다는 법주사의 의도에 군 당국이나 주민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주사가 밝히는 속리산 개발 취지는 이렇다. 속리산은 천년고찰이 있는 법 도량입니다. 자연환경이 뛰어난 명승지로서 남 금강산, 소금강산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누구나 익히 다 아는 사실입니다. 속리산은 역사 깊은 법주사가 있음으로 해서, 속리산 전체가 이름 그대도 속진 을 떨쳐버린 법 도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3년)에 의신조사께서 법주사를 창건한 이래 진표율사가 중창을 했고, 진표율사께서는 영심대사 등에 말씀하시어 산중에 길상초가 있는 곳을 택하여 가람을 이룩하고 교법을 펴라고 하신 바, 이에 영심대사 등은 속리산에 들어가 길상초 있는 곳을 찾아내어 절을 짓고 길 상사라 이름했으며 이것을 기념하여 그 뒤 1101년(선종6)고려 선종께서는 그의 아우인 대각국사로 하여금 법주사에다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중흥을 위하여 「인앙대법회」를 열고 3만 승중을 회집케 하여 흥융한 법률을 진행했다 합니다.

법주사라는 이름은 의신조사께서 서역에서 법을 구하시고 돌아오실 때 삼보 중의 법 보인 부처님 경전을 가지고 오셔서 머무신 것으로 유래된 것입니다. 서역(지금 인도)에서 직접 불경전을 받들고 와서 모신 것이 신라 진흥왕 13년경이라면, 고려대장경을 인치한 해인사에 비해 그 먼저 법 보의 의미가 있는 법주사임을 역사적 사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미륵신앙에 투철했던 진표율사께서는 국가와 민족의 중흥을 비는 염원에서 법주사를 중창하고, 미륵불 님께 발원하여 그 시대에 많은 상서가 나타남을 얻고 그때마다 세월이 태평했던 중시가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70사암과 3000대중이 있던 산중입니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은 세속적 탐진을 여의고 법식이 베풀어졌음을 물론, 민족의 염원과 신념과 신비가 엉켜져 있는 법 도량입니다.

근본 바탕과 뜻에 맞게 개발한다면 이곳에서 민족의 역사정신을 찾고 자비, 기적과 구원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어언 일천 오백 여 년이 되는 신비와 신념이 갖추어진 터전은 민족의 역사적 신념과 의식에서 보존되고 개발도 착안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의 이곳 속리산 일대에 대한 개발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의 개발은 전면 백지화하는 정신에서 다시 착안되어야만 이곳은 본분과 면목을 살리고 후손대해 발전과 번영을 기약해 주게 될 것입니다. 기존에 개발된 그런 정도의 방법으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국가와 민족 장래에 대해 뜻 없는 일이며, 어찌 보면 좋은 보배를 내던지고 후손들에게 정신적 빈곤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부끄러운 선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의 휴식과 놀러간다는 편의나 제공하는 개발은 역사적 신념이 있는 법주사로서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속리산 법주사를 비록 모든 시설과 엄숙한 환경을 찾아보고 쉬기도 하지만 배우러 가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버스주차장 아래로 위락영업 및 상가 시설은 옮겨져야 하고, 지금 주차장 위로는 우리 민족이 역사적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제반 시설 교육장으로 성역화해야 합니다.

그러함으로 수 없이 찾아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민족의 역사적 교훈에서 무언가 진실로 얻어 감으로 해서 민족천추에 이익 되는 개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위락과 편의를 도모하는 레저 시설을 반대치 않습니다. 하지만 위에 말한 모든 시설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넋이 빠진 개발이므로 반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상영업자의 얄팍한 계산의 개발이라던가, 공해 무성시대의 휴식처를 제공한다는 정도의 상식적 안목에서 이곳 일대의 개발이 착안된다는 것은 민족 장래에 비참함을 맛보는 실패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충북의 유일한 역사적 신념이 엉겨있는 웅대한 터전입니다. 국토의 균형개발 차원에서 관계당국도 하나뿐인 역사적 장소의 개발이 가능한 곳은 속리산뿐인데, 민족사의 차원에서 개발착안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당국도 요즘 상식적 개발의 차원을 벗어나서 이곳만은 민족의 휴식과 함께 역사적 문화와 넋을 찾는 곳으로 개발되도록 적극 협조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신조의 신념을 되찾아, 가치 있는 고장으로 통일 한국의 장래에 이바지하겠다는 원력으로 이와 같은 개발은 발원하며, 몇 가지 강조하는 말씀으로 끝맺고자 합니다.

첫째, 우선 곶감이 달지만 먹고 없어지는 개발은 애당초 안 해야 합니다. 둘째, 우선은 힘들지만 지금의 주차장 밑으로 제반 위락시설이 확충되고, 주차장 위로는 역사 교육적 문화시설이 되었을 경우 쉬러오는 사람과 재우러 오는 사람이 복합됨으로 관람객 증가로 인하여 주변 주민들의 영업이익도 배가됩니다.

셋째, 통일시대를 대비해서 개발은 신중히 착안되어야 합니다. 넷째, 속리산 마저 위락지 차원만으로 개발된다면 충북에는 자연환경으로 역사교육이 될만한 장소는 한 군데도 없게 됩니다. 이것은 이 지역을 위해 통한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다섯째, 지역사회의 자존의식으로 역사정신에 착안해서 속리산을 개발하고 이런 의미에서 정부도 개발협조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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