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순이의 연말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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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이의 연말연시
  • 보은신문
  • 승인 1993.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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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춥고 긴 겨울…힘든 살림 도맡아
눈이 녹아내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행여 흙벽이 허물어져 집이 내려앉지나 않을까 걱정해 선잠을 깨기 일쑤이고, 한겨울 찬바람이 거침없이 방을 휘돌아 나갈 때면 내 몸이 추운 것보다는 늙으신 할머니(88)와 어린 동생의 이불 밑을 다독거리는 민진순 학생(보은 강산, 보은여중2) 기억도 나지 않는 어머니는 어릴 적 정신이상으로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고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진순학생은 10살 되던 해부터 엄마대신 살림을 도맡아 해왔다.

농사지을 땅 한평 없는데다 건강마저 좋지 않은 아버지와 눈먼 할머니, 그리고 남동생 청규(보은중 1)를 모두 돌봐야 하는 진순학생의 하루는 고달프기만 하다.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고 할머니와 아버지의 점심상까지 봐놓고서야 학교로 향하는 진순학생은 생활보호비로 받는 12만원과 한포대의 배급쌀로 한달 생활을 꾸려 나가 여느 알뜰주부보다도 더 알뜰하다.

건강이 나쁜 아버지가 품을 팔아 벌어오는 돈을 합해도 할머니 약값과 생활비, 학비를 빼고나면 얼마남지 않는 돈 때문에 옷한번 사입지 못하고 이웃에게 얻어다 입는다. 그나마 겨울잠바가 없어 한겨울에도 얇은 봄외투로 대신해야 하는 추운겨울이지만 그보다 부엌에서 북데기로 불을 때면 방안가득 자욱히 끼는 연기가 더 걱정이라는 진순학생. 지금 사는집은 폐농가를 20만원을 주고 이사한 집인데 워낙 낡아서 손보기 힘들정도.

이처럼 어려운 생활로 진순학생이 맞는 연말연시는 유난히도 춥고 길다. 이직 친구들이 엄마가 안 계신 것을 모를 정도로 밝게 생활하는 진순학생이긴 하지만, 방학을 맞아 불을 지필 북데기를 긁어모으고 뚫린 벽을 신문지로 메꿔 바르는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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