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보수, 진입로 확포장 등 추진
사적 제235호로 지정된 삼년산성의 정비보존으로 삼년산성이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속리산 일원과 연계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군민들에게는 휴식 공간으로 활용될 전망이어서 주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군은 올해 사업비 2억8천6백만원을 들여 11.1m의 성곽을 보수하고, 1억원을 들여 5m 폭으로 1.1km 구간의 삼년산성 진입로를 확포장할 계획이다. 또한 생활용품이나 농가구 등 관내 민속자료 전시공간으로 활용될 민속자료관이 삼년산성내에 사업비 5억여원을 들여 2백평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이로써 지난 '77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한 성곽보수는 총 보수구간 1천80m중 올해까지 보수를 완료하면 2백86.6m가 복원된 것이지만 1천4백여년의 세월이 흘러 전체적으로 무너질 위험성이 있어, 성곽복원은 오는 '96년 이후까지도 연차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원형에 가깝게 성곽을 완전히 복원한다면, 학술가치가 높은 삼년산성이 각급 학술단체나 학생들에게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각광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며, 산성까지 가는 진입로를 깨끗이 포장하고 주민편의 시설이나 위락시설 등을 유치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慈悲王) 13년(470)에 축성, 3년간의 공사를 통해 완성되어 '삼년산성'이라 불리워 졌는데 3년간의 공사치고는 매우 방대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소지왕 8년(486)에 일선 장정 3천명이 개축하였으며 진흥왕 15년에 백제의 성왕이 쳐들어와 환산성에서 신라가 연패하던 중 삼년산성 주둔군이 출절, 성왕과 백제군 2만9천6백여명을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렸다는 것으로 보아 신라가 이성을 서북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중요한 전방기지로 삼고 최저예 부대를 주둔시킨 성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년산성은 성곽 내·외부가 수직에 가까운 석축벽면(石築壁面)으로 구축된데다, 판석형의 석재켜를 재워 납작한 돌로 견고하게 성을 쌓았다. 또한 동·서·북쪽에 문지가 있고 동문지 부근에는 수구가 있으며 토사를 전혀 섞지 않고 내부까지 전체를 석축으로 해 견고하게 구축하였다. 그 외 서문지 부근에 아미지가 있고 동문지 부근에 건물로 지정되는 곳이 20개소가 있으며 성내에는 보은사가 있고 외곽능선에 많은 고분이 산재해 있어 중요한 사적지가 되고 있다, 앞으로 삼년산성이 군민들의 휴식공간을 각광 받기까지는 주차장이나 화장실 등 주민편의 시설이나,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도록 산책로나 조경등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속리산이 수학여행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때에 삼년산성에 대한 홍보활동을 보다 확대해 속리산을 찾는 수학여행단이 반드시 삼년산성을 거쳐가도록 해 고대성곽긍로 역사적 가치와 기술적 방법 등 고증학적 자료가치가 높은 삼년산성을 역사적 산교육장으로 활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삼년산성 내에서 발견된 유물, 즉 토기병 뚜껑, 신라 토기그릇 뚜껑, 고배(잔), 토기소호(단지), 토우편(소머리 부분), 방추자편, 숱돌, 화살촉, 정기와편, 새창, 분청사기 대접, 토수기와, 뿔제품 등을 문화재관리국에서 가져가 박물관 등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삼년산성내에 준공할 민속자료관에 유치될 수 있도록 추진해 민속자료관이 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각광받을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이다.
삼년산성은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그 역사적 가치를 다시금 재평가,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복원계획과 아울러 유서깊은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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